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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어지럽고 남강은 무심히 흐르고...

    [데일리안] 입력 2017.01.22 09:57
    수정 2017.01.22 12:16
    데스크 (desk@dailian.co.kr)

<어느 퇴직부부의 신나는 전국여행-열여섯번째날>

소매물도~진주성 및 진양호~고흥 나로도

【7.22(수), 열여섯 번째 날】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조남대소매물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조남대
소매물도에서 바란 본 등대섬. 물이 빠지지 않아 건너가지 못했다.ⓒ조남대소매물도에서 바란 본 등대섬. 물이 빠지지 않아 건너가지 못했다.ⓒ조남대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해녀들이 판매하는 명게, 해삼, 소라 등 해산물.ⓒ조남대소매물도 선착장에서 해녀들이 판매하는 명게, 해삼, 소라 등 해산물.ⓒ조남대

6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꿀빵으로 아침을 때운 다음, 6시 30분에 충무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7시에 출발하는 소매물도행 표를 사서 승선했다. 처음에는 1층에 앉아서 가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시원하다. 그래서 쭉 있었더니만 외항으로 나갈수록 배의 울렁거림이 더하여 멀미 증세가 조금 있어 1층으로 내려와도 마찬가지다. 산홋빛 해변을 가진 비진도를 지나 1시간 30분을 달려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승객들 대부분도 소매물도에서 내린다. 섬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섬을 둘러보면서 올라가기 위해 옆길로 가고 내려올 때는 직선 길로 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안개가 자욱하여 주변 경치를 볼 수가 없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욱 안개가 짙어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옛 소매물도 분교와 정상에 있는 매물도 관세역사관을 둘러보고 등대섬으로 가기 위해 하선한 반대편 해변으로 내려갔지만 밀물인 관계로 길이 드러나지 않아 등대섬에는 건너갈 수가 없었다.

매물도는 메밀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남쪽으로는 대마도가 불과 70여 ㎞ 거리에 위치해 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사회혼란을 틈타서 대마도를 거점으로 한 일본과의 해상밀수가 성행하여 밀수를 근절하고 선박들의 항로 이탈을 감시하기 위해 매물도 레이더기지를 설치한 것이 매물도감시서란다.

섬 주민의 말에 의하며 오후 4시가 지나야 물이 빠져 등대섬에 들어갈 수 있단다. 소매물도에 8시 반에 도착하여 12시 40분에 나가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상 등대섬에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등대섬과는 불과 80m밖에 안 되는 거리인 데다 파도가 낮아질 때는 건너가는 길이 보이는데도 건너가 보지 못하고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소매물도에 간 이유는 등대섬에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왔는데 많이 아쉬웠다.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상당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야 했다. 쉬엄쉬엄 올라와서 또 하선지점으로 내려왔다. 선착장 부근 등대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 승선시각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생선구이와 멍게비빔밥을 먹었다. 멍게비빔밥은 멍게 향기가 입안에서 향긋하게 나는 게 맛이 너무 좋았다. 이때까지 먹은 멍게비빔밥 중 최고의 맛이었다. 주인에게 아주 맛있었다고 이야기 해 드리니 고마워하신다. 부둣가에 내려오니 천막 아래 해녀 할머니들이 해삼을 팔고 있어 1만 원어치 사서 먹었다. 해삼도 맛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12시 40분이 되자 배가 정확히 도착했다. 배에 승선하여 대매물도와 비진도 등을 거친 후 3시경에 통영 항에 도착했다. 2시간 20분이나 소요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흔들거리는 배를 탔더니 상당히 피곤하고 정신이 어지러운 것이 멀미 끼가 조금 있는 것 같다.

촉석루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하는 시민.ⓒ조남대촉석루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하는 시민.ⓒ조남대
촉석루 현판.ⓒ조남대촉석루 현판.ⓒ조남대
진주성 성문과 누각.ⓒ조남대진주성 성문과 누각.ⓒ조남대

다시 차를 몰아 진주성으로 향했다. 진주성은 깨끗하게 관리가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주성은 김시민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1592년 10월 5일에 벌어진 제1차 싸움에서 3,800여 명의 병력으로 6일간의 공방전 끝에 일본군 2만 명을 물리친 임진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현장이다. 다음 해 6월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자 주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해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논개의 신위와 영정을 모신 ‘의기사’도 있다.

위와 같이 진주성은 국난을 극복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각종 시설과 전각들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어 뿌듯했다. 특히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명승으로 손꼽히는 촉석루에 올라가 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데다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멋진 곳이다.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1241년) 진주 목사 김지대가 창건한 이후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가 6·25 전쟁으로 불타 1960년에 다시 지은 것이란다. 예로부터 남으로는 진주 촉석루, 북으로는 평양 부벽루라 할 만큼 아름다워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전해져 오고 있단다. 지금도 촉석루 천정 사방에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각종 글씨와 그림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전쟁 때는 장수의 지휘소로,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명소란다.

진양호 풍경.ⓒ조남대진양호 풍경.ⓒ조남대

진주성 관람을 마치고 진양호로 향했다. 진양호의 넓은 수면과 아름다운 호수를 보니 가슴이 후련하다. 경희와 함께 사진을 몇 컷 찍은 다음 고성 나로도까지 가야 하는 관계로 서둘러 출발했다.

거의 2시간 30분 정도 걸려 진주에서 광양, 순천을 거쳐 고흥 나로도 우주센터와 가까운 하얀노을펜션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섬진강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으니 벌써 어두워졌다. 비가 오는 어두운 밤길을 오랜 시간 동안 운전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날에는 앞 차를 따라가며 운전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경희가 전화로 잘 흥정을 하여 작지만 4만 원에 펜션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방도 적고 아무 시설이 없어 모텔보다 못한 수준이다. 싸고 좋은 물건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모르면 비싸게 주라고 했던가.

주인에게 아이스박스에 넣을 물병을 얼려달라고 부탁했다. 벌써 11시 10분이다. 오늘은 충무, 진주, 광양, 순천을 거처 고흥까지 220km나 달렸다. 너무 먼 거리를 그것도 비오는 밤길을 운전한 탓인지 피곤하다. 자야겠다.

글/조남대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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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조남대 씨는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현재 경기대 정치외교학 박사과정중에 있으며 정년퇴직한 부인과 함께 일상에서 탈출, 55일간의 전국여행을 끝마치고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여행'(북랩출판사 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서 독자들로 부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여정의 하루 하루를 데일리안에 재편집해 연재를 시작하는데 내용안에 부부애가 듬뿍 담겨있어 평소에 '닭살' 돋는 것을 못참는 독자는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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