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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비즈니스 예술의 끝판왕'앤디워홀

    [데일리안] 입력 2020.08.27 14:10
    수정 2020.08.27 14:11
    데스크 (desk@dailian.co.kr)

앤디 워홀, <9달러 사인Nine Dollar Signs>, 1982년,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101.6×81.28cmⓒ앤디 워홀, <9달러 사인Nine Dollar Signs>, 1982년,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101.6×81.28cmⓒ

예술은 끊임없는 질문에서 생산되는 창작물이며, 이를 예술소비로 이끌어내는 비즈니스 아트(Business Art) 또한 최고의 예술이다,


예술가라면 한번쯤은 벤치마킹해 볼 법한 대표적인 현대미술의 거장이 있다. 마르셀 뒤샹과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이다. 개념미술의 대가라 칭송 받는 이들은 ‘생각이 예술이 되었고, 삶이 예술이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최초의 예술가들이다.


지금의 예술가들은 이 두 거장의 판이하면서도 닮은 삶과 예술에 특별히 주목한다.


이들은 어마어마한 명성을 누렸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뒤샹은 지나칠 정도로 돈과 명성에 관심이 없었고, 반면에 워홀은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현재 이 두 거장을 두고 예술가들은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살았던 뒤샹을 존경하면서도, 예술을 통해 큰돈을 벌며 마치 연예인과 같은 삶을 살았던 워홀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기도 한다. 이런 두 거장을 가장 적나라하게 벤치마킹한 예술가들이 있는데 바로 yBa의 대표주자인 데미언허스트와 후기 팝 아티스트인 제프쿤스다.


앤디워홀은 미술사상 처음으로 “비즈니스가 최고의 예술이다”, “나는 상업미술가다”라고 공언하며 예술은 비즈니스임을 천명한 작가다. 실제로도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낸 비즈니스 적으로 성공한 화가인 샘이다. 이번 칼럼에서 앤디워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앤디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 칭하였고 스스로 그곳의 공장장이 되었다. 그의 작업실에 조수들을 고용하여 작품을 마치 공산품처럼 찍어내어 팔기 시작했다. 미술품을 대량 생산, 판매하는 경영전략을 도입한 것이다. 앤디워홀의 이런 ‘공장’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원하는 예술품, 즉 ‘제품’을 무한대로 복제해 낼 수 있는 장터가 됐다.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제작방식과는 태초에 시작부터 남달랐던 것이며 기존 예술계가 혼자 생산한 창작물만 예술로 평가하던 시대의 통념을 완연히 비틀어 버린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함이 목적인 상업미술가로서의 워홀이 그의 욕망으로부터 공장에서 가장 먼저 생산해 낸 그림은 ‘돈’을 주제로 한 작품 ‘9달러 사인’이다. 이 작품은 “넌 가장 사랑하는 게 뭐야?”라는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실크스크린’이라는 고급 인쇄로 대량생산 시스템을 가동해 제작되어 그의 무수한 그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이 예술작품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또 사회 유명 인사들을 ‘공장’ 작업실로 초청해 광란의 파티를 열고 흥청망청 놀기도 했다. 그 작업실은 앤디워홀의 욕망을 채우는 공간이자 마케팅의 핵심이었다. 유명인 들을 그려 그들의 명성에 기대 작품을 팔 수 있었고, 모델이 되지 못한 이들로부터는 작품을 살 테니 초상화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아 돈을 벌기까지 했다. 상업디자이너 출신의 워홀은 경험상 시장을 읽고 요리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스타가 되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예술가상을 만들어 갔다.


자기 작업실을 개방하고 사교파티, 약물, 동성애를 즐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 스타들이 그러했듯이 ‘신비화 전략’ 또한 구사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명확한 대답을 피하며 ‘미스터리’로 남기를 원했고 “질문 받을 때 마다 다르게 대답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전략은 아트 스타로 명성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체득한 결과였다.


워홀은 자신의 성공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의 다음 단계는 사업예술(Business Art)이다. 나는 상업미술가로 출발했으며 사업예술가로 마치기를 바란다. 사업을 잘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예술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워홀은 대중문화의 산물을 이용하여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단번에 해체시키고, ‘예술이 곧 비즈니스’라는 공식을 성립시켰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대량생산하는 전략으로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비즈니스로서 예술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각종 장치를 활용한다.


워홀은 피카소 이후에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부와 명성을 한 번에 거머쥔 인물이기에 순수미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앤디 워홀은 당대에 ‘피카소’ 이상의 영향력을 남겼음에는 틀림없다.


워홀 본인은 자신의 명성이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예측했지만 그의 작품은 그가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워홀효과(warhol effect)’를 낳고 있다. 그는 21세기가 원하는 창조적 인재의 롤 모델-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미술소비 3단계를 각각 언급하며 좋은 작품의 선택 기준은 미술사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미술사 공부를 통해 90%가 예측 가능하다 언급 한바 있다. 미술사속 예술가들의 슬기로운 예술사업 활약상은 비단 워홀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예술작품의 미술사적인 가치와 더불어 주요 거장들의 사업예술 활약상을 함께 살펴본다면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는 관점을 넘어서 비즈니스 예술의 끝판작 임을 몸소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슬기로운 예술소비의 선택지이자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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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aya@artcorebrow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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