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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웃는 얼굴에 침 뱉기’ 당하는 까닭은?

  • [데일리안] 입력 2019.12.16 09:00
  • 수정 2019.12.16 08:17
  •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레토릭‧퍼포먼스 자랑은 그만

북한의 대미 자해공갈외교…말 인심 너무 후하면 빚이 된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레토릭‧퍼포먼스 자랑은 그만
북한의 대미 자해공갈외교…말 인심 너무 후하면 빚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은 말을 어눌하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연설문을 보면 말 꾸밈이 발군이다. 아주 귀에 착착 달라붙는 약속들을 멋 부린 용어를 동원해 아낌없이 뿌린다. 그의 측근이라는 사람들, 여당의 실세라는 인사들의 말재간도 역시 대단하다. 선전선동에 능한 운동권 출신들이어서 그런지 당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을 정도의 언변이다.

말이 너무 달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기대감은 정도 이상으로 부풀어 오르고 만다. 예컨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구사한 어휘는 아주 화려하지만 그런 낙원은 인류사 그 어느 때, 어디에서도 구현된 바 없다. 작은 동네라면 비슷하게라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와 정치인이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기에 대한민국은 너무 크다. 못 지킬 공약을 남발한 바람에 국민의 불신이 더 부풀어 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레토릭‧퍼포먼스 자랑은 그만

북한 김정은 집단의 문 대통령에 대한 폭언도 맥락은 같아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인 언변과 표정으로 다가갔다. 게다가 그의 참모들은 퍼포먼스에서 탁월한 역량을 뽐냈다. 작년 2월 평창올림픽 때의 ‘북한 손님맞이’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성공이었다. 그 결과 4‧27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판문점 선언’이 채택됐다. 문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많은 약속을 했다(‘도보다리 대화’에서는 또 어떤 다짐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김정은이 솔깃해 할 문 대통령의 포부가 피력 되었을 듯하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미‧북 정상회담이 작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4개항의 합의문을 내놓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당연히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기여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보기보다는 훨씬 교활하고 영리했다. 트럼프와의 직거래에 공을 들였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장삿속과 맞아 떨어져 ‘친구사이’가 됐다. 그런데 일이 순조롭게 풀렸으면 또 모르겠으나 미‧북 비핵화 협상의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갔고, 김정은의 짜증지수는 높아졌다. 문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실망감‧배신감도 덩달아 상승했을 법하다. “큰소리치더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그런 기분 아니었을까?

북측은 지난 2‧28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노골적으로 문 대통령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주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이를테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8월 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따위의 표현이었다. 김정은이 직접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한의 대미 자해공갈외교

“앞으로 대화를 위한 좋은 기류가 생겨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철저히 미국과 북한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남북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이는 지난 8월 11일에 나온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의 담화 한 대목이다. 과거에도 물론 북한은 막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에게까지 이러는 데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다. 정말 조심하면서 좋은 말만 골라서 친애의 정을 표해온 문 대통령에게 오히려 더 심한 조롱과 비난을 퍼붓다니! 만만해 졌다는 뜻으로 들린다. ‘미국과 직접 상대하는데 한국 정부쯤이야’ 하는 허세도 느껴진다. 한 마디로 길을 잘못들인 결과다.

지난 7일에 북한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킬 중대한 시험’을 했다더니 13일에 또 같은 주장을 했다. 6일 만에 두 번 중대한 시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간, 앞으로는 협상을 한다면서 뒤로는 ICBM 성능개선을 계속해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연말을 앞두고 계속 ‘중대 시험’으로 압박을 계속할 개연성이 높다. 핵무기 쪽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노골적인 대미 자해공갈외교인 셈인데 극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이제 와서 북한이 요구하는 ‘새로운 셈법’을 연말 안에 제시할 전망은 없어 보인다. 달래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북한이 바라는 셈법이 아니다. 이러는 가운데 이 해가 넘어가면? 북한은 그 핑계로 ICBM 발사시험을 할까? 그렇게 까지지는 갈 것 같지 않다.

북한은 그간 ‘벼랑 끝 전술’ ‘자해 공갈’ 따위를 걸핏하면 구사해왔지만 직접적 성과를 거둔 적은 없다. 그런데도 왜 지치지도 않고 같은 책동을 되풀이 할까? 그 덕에 시간을 벌었고, 그 결과로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다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국제적 제재로 북한 주민들의 생계난이 가중되긴 했겠지만 김정은을 정점으로 한 북한 지배세력에게는 못 견딜 정도의 어려움이 아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많이 남는 거래가 된 것이다.

말 인심 너무 후하면 빚이 된다

앞으로도 북한이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자해나 자살을 정말로 기도하는 일도 있을 리 없다. 예나 마찬가지로 한껏 밀어붙여 보다가 세 불리하면 협상 무대로 복귀하는 시늉을 할 것이고 분위기가 느슨해지면 또 공갈 모드를 취하는 식의 태도를 되풀이 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가다가 어느 날 핵탄두 탑재 ICBM 기술과 성능이 충분히 미국을 겁줄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 역량을 과시하면서 거래를 트려고 할 게 뻔하다.
어쨌든 북한은 14일 두 번째 중대 시험을 자랑한 다음 15일에는 대외용 평양방송(라디오)을 통해 문 대통령을 비난했다. 늘 그렇듯이 조롱이 곁들여졌다.

“남조선의 현 당국은 당장 존망의 위기에라도 처할 것 같은 위구심에 사로잡혀 외세에 조선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구걸하는 멍텅구리 짓만 일삼고 있다.”

문 대통령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것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것도 북측의 조소‧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5일 방한해서 16일 문 대통령과 만나기로 예정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들으라고 더 목소리를 높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을러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말의 효용성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내정치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북한 김정은 집단에 대해서는 ‘고운 말’도 가려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반도 신시대’ ‘평화 경제’ 등은 북한비핵화 이전엔 신기루에 불과하다. 9‧19군사합의 같은 것도 일시적인 제스처로는 모르겠으나 구조화되기는 불가능한 약속이다.

말 인심이 너무 후하면 만만하게 보일뿐 아니라 빚진 적 없는 채무자가 되고 만다. 개인 간에나 국가 간에나 꾸밈이 심한 말일수록 신뢰성은 떨어진다. 취임사 같은 것에서는 어쩔 수 없이 멋있는 레토릭, 화려한 구상, 현란한 꿈을 나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허언증’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 받지 않으려면!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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