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의날 행사서 '탈원전 기조' 반복
유럽 순방에선 "한국 원전이 세계 최고…신규원전 함께 짓자"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중유럽 순방에서 한국원전에 잇달아 러브콜을 보낸 각국 정상들에게 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왔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탈원전 기조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이중행보' 논란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탈원전은 이미 국내에서도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기관장들은 최근 탈원전에 각을 세우며 소신 발언에 나선 데다 여권 대선 후보까지 조급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정부의 탈원전을 정면 비판했다. 이에 정부가 달라진 정책 기조를 내비칠 것이란 기대도 나왔지만 전향적 움직임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문재인 정부 마지막 '원자력의 날' 기념행사는 탈원전 기조만 재확인한 자리였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공동으로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제11회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원래 원자력의 날은 12월 27일이지만 올해는 4일 앞당겨 추진됐다.
이 자리에서 당국 참석자는 원전 수출만 강조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신규 원전 추진 재개 등 탈원전 정책 손질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간 신규 원전 건설이 원자력 산업 발전을 견인했다"면서도 "에너지 전환이라는 변화된 환경에서 원전 생태계의 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동 원전의 안전한 운영과 새로운 수출 시장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원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가는 탈원전 정책과 에너지 전환 기조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탈원전 기조 하에서 원전 생태계의 몰락이 상당히 진전된 만큼 정부가 주장한 원전 수출의 명분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에선 원전 함께 짓자더니…'원전 내로남불' 논란
불과 한 달 전 문 대통령은 중유럽순방에서 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40여 년간 원전을 건설·운영한 점을 강조하며 신규원전 사업 과정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4일 한-V4(비세그라드 그룹, 폴란드·체코·헝가리·슬로바키아 협의체) 정상회의를 마친 후 에두아르드 헤게르 슬로바키아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수교 30주년을 앞둔 양국 협력이 방산과 인프라, 원전 등으로 확장돼 더욱더 굳건한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폴란드 정상회담에서는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에게 "최근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양국의 협력이 인프라, 방산를 비롯해 원전 등으로도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양 정상은 폴란드 신규 원전 사업과 관련해 산업부 장관이 폴란드를 방문해 논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는 "원전 건설 관련 한국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체코 신정부와도 관련 논의가 잘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체코가 원전, 방산 같은 협력 분야 확대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총리의 지속적인 관심을 기대한다"고 말하며 회담을 마쳤다.
전날인 3일 한국-헝가리 정상회담에서는 아데르 야노시 헝가리 대통령의 회담 결과 발표로 논란이 발생했다. 아데르 대통령이 공동언론발표에서 "원전 에너지 사용 없이는 탄소중립이 불가하다는 것이 양국의 공동 의향"이라고 발언한 게 화근이 됐다. 이는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도 원전을 폐지하는 한국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 정반대라 '원전 내로남불'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난 이 같은 발언을 실제 아데르 대통령에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거셌다.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국내와 국외에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정부는 국내에선 원전 사업을 사장시키고 우수 인재는 전부 해외로 유출하며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며 "바다만 건너면 입장이 달라진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