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선택 2022] 정책에서 정치로 변질된 '탈원전'…차기정부, 제자리로 돌려놔야


입력 2022.01.01 07:02 수정 2022.01.01 17:00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급진적 탈원전 추진, 절차적 정당성 상실

산업부・한수원, 청와대 꼭두각시 전락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린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이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치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주무부처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 공약을 추종하며 정책 의사결정을 비합리·비상식적으로 남용했고 원전 운용이 본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산업부 압력에 굴복해 탈원전 꼭두각시로 전락한 모습이었다.


탈원전 정책은 시작부터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 정부는 2014년 수립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2035년 원전비율 29%'로 명시돼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수립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2030년 원전비율 11%'를 명시했다. 에기본(5년주기)은 전기본(2년주기)의 뼈대가 되는 상위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에기본 수정이 선행돼야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월성1호기 감사는 탈원전 정책 비합리적 추진을 덮기 위한 정치적 외압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이다. 감사원은 2019년 말부터 감사에 돌입했지만 정치권의 방해와 정부의 비협조로 1년 넘게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당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감사원장이 되고서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며 "자료 삭제는 물론 사실대로 말도 안 했다. 사실을 감추고 허위 자료를 냈다"며 혀를 내둘렀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2020년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뉴시스

1년여 간 감사 결과, 원전의 가동 중단을 목표로 경제성을 낮춰잡기 위한 청와대-산업부-한수원 간 유착 고리가 형성됐음이 드러났다.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질문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원전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고 막말까지 하며 '즉시 가동 중단'으로 계획을 바꾸도록 했다.


원전 과장은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장관이 시킨대로 한수원 본부장을 호출해 "월성1호기는 조금이라도 재가동은 안 된다"고 통보했다. 한수원 이사회를 앞두고 회계법인 관계자를 불러서는 "막말로 우리가 원전 못 돌리게 하면 이용률 나올 수 없는 것 아니냐. 월성1호기 장래 이용률은 30~40%밖에 안 될 것"이라며 경제성 평가를 낮게 잡도록 압력을 가했다.


비밀리에 진행된 청와대 외압이 커다란 폭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산업부 공무원은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월성1호기 조기폐쇄 관련 청와대 보고 문건(파일명 BH) 등 530건을 삭제했다. 최근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공무원은 "청와대와 직접 관련돼 파장이 커질 수 있어 자료를 삭제했다"고 진술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의원 질의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다. ⓒ뉴시스

그 와중에 북원추(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아이디어가 담긴 문서까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경제성 조작까지 마다하지 않고 탈원전을 밀어붙인 정부가 원전을 북한과 핵심 경협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경제성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추진돼야 할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도그마로 변질되면서 국익에도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혔다. 한수원은 조기폐쇄 결정 후 월성1호기 잔존가액 5600여 억원을 '자산손상처리'했다. 여기에 월성1호기 가동 중지로 가스발전소 발전이 늘면서 손실이 발생했다.


두 발전원 판매단가 차액은 kWh당 60원, 잔여 수명 4.4년 동안 발생되는 추가비용은 이용률에 따라 1조1000억~1조3000억원이다. 두 비용을 합해 대략 1조8000억원대다. 정부가 올해 탄소중립에 투자하는 R&D 예산(1조9274억원) 수준의 큰 금액이 탈원전으로 증발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60년간 원전 기술자립과 국산화로 쌓아 올린 공든 탑도 무너지고 있다. 기술자립과 부품 국산화 노력 끝에 이루어낸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스스로 포기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원자력발전산업 뿐만 아니라, 원자력연구, 인력양성 등 모든 원자력 생태계가 분야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무너지면 복원이 어려운 원자력 생태계의 붕괴는 정부가 고려하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방소멸대응특별법안 국회발의 간담회 시작에 앞서 열린 사전환담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20대 대선후보들은 탈원전에 대한 입장을 표심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줄곧 탈원전을 주장해온 이재명 후보는 최근 '감(減)원전' 의사를 밝혔고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에 대해 "국민의 합리적 판단을 존중하겠다"며 정부와 결을 달리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폐지 입장을 밝혀 원전 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선 후보들이 탈원전을 정치이념화하면 문 정부와 똑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탈원전 이념화에서 벗어나 미래 에너지 공급과 수요, 기술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에너지 계획의 관점에서 원전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기사 모아 보기 >
0
0
유준상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