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교육·의료 서비스 받을 수 없어…교육적 방임 및 의료적 방임 등 심각한 기본권 침해
전문가 "본인이 신청하면 학교 입학은 가능…수학여행·체험활동 할 수 없어"
"부모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은 것…출생미등록은 명백한 학대"
"사회적 존재로서 고립…한 개인으로 정체감·자존감·가치관 형성할 수 없어"
출생미등록 아동은 생애 모든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 갈 수도 학교에 다닐 수도 없다. 가정에서 학대 당해도 감춰지기 쉽상이다. 이 같은 고통 속에 아이들의 가장 큰 아픔은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교육, 의료 서비스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출생미등록은 명백한 학대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출생등록이 되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다.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장 재량으로 지역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학교에 다닐 수는 있지만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몸이 아파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고, 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장애 등급 인정도 받을 수 없다. 통장을 만들 수도 없고 당연히 국가에서 지원하는 모든 복지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서 발달은 집단으로 모여 있을 때 일어난다"고 강조하고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과는 별개로 또래 간의 활동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또래의 성장 발달 과정에서 감정을 전달받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미움, 애착 등의 감정을 갖고 느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이것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윤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 과장은 "출생등록이 되지 않은 아동도 본인이 신청할 경우 입학을 허용한다"며 "그러나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거나 체험활동을 갈 경우 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학교의 다양한 활동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의료 서비스는 주민등록번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장애아동이어도 장애 아동시설에 들어가거나 바우처를 지원받을 수 없다"며 "장애나 질병이 있어도 아이 특성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기본권인 교육권, 건강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출생등록이 안 됐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엄청난 학대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로 물리적 학대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아동학대로 신고, 접수된 사례를 조사한 결과 178명이 출생미등록 아동이었다. 또 해마다 50~70명의 미등록 아동이 학대당하고 있었다. 미등록 아동은 학대로 인해 사망하더라도 세상에 없는 존재기 때문에 세상에 살다 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마디로, 부모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은 것"이라며 "출생미등록은 명백한 학대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대표 또한 "학교를 안 보낸 것은 교육적 방임,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하지 않거나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한 것은 의료적 방임"이라고 설명했다. 공 대표는 미등록 아동에게 발생하는 물리적 학대에 대해 "학대를 해도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학대가 일어나기 쉽다"며 "출생등록이 돼있지 않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당연히 학대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출생미등록 아동이 힘든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는 것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이들은 그걸 누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행복의 큰 부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갖는 것이고, 정체감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인생인데, 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고립되고 한 개인으로서 정체감, 자존감, 자기 가치관을 형성할 수 없는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원활할 수 없고 이에 따른 제약으로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