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숨기고 싶어하는 산모들, 병원 방문 기피…전문가 "보호출산제도 논의해야"
"추후 출생신고시 번거로운 과정이나 각종 비용…정부가 적극 나서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출생미등록을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방법으로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하는 '출생통보제'를 제시했다.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면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출생을 등록하게 된다. 현재 출생아의 99.5%는 병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출생통보제'를 도입할 경우 병원 밖에서 태어나는 0.5%의 아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가 출생신고된다. '출생통보제'는 지난해 6월 입법 예고됐지만 관계부처에서 고민하는 사이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황윤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 과장은 "현재는 병원에서 출산한 후 아이가 어딘가로 숨어버리면 아무도 찾지 못한다"며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출생통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99.5%의 아이가 병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1차적으로 '출생통보제'를 시행하면 많은 아이의 출생미등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라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는 "우리나라는 출생신고를 부모에게 일임하고 있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도 파악할 방법이 없다"며 "'출생통보제'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공백을 최소한으로 메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산모들이 병원에 오는 것을 꺼리게 된다는 이유에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의 업무가 많아지고 부담이 커지게 되는 것도 걱정이다.
황 과장은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산모도 있고, 출생신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 등을 정작 국가에서 보호해 주지 않는데 왜 의료계에서 그 역할로 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있다"며 "의료계의 부담이 업무적, 경제적으로 커진다는 이유에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출생통보제'는 실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몇 명인지 파악해야 이후 발생하는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라며 "'출생통보제' 도입을 일단 먼저하고 나서 보호출산제 등을 논의해 출산 사실을 감추고 싶은 이들에게도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든 제도나 법이 100%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며 "완벽한 제도나 법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생신고가 제도화되면 의료인들도 당연히 '아이가 출생하면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다'라고 본인들의 의무로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후에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비용 문제나 출생신고 과정이 번거로워 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소 교수는 "현재는 출생미등록자가 추후에 출생신고를 할 경우 병원의 출생증명서가 없으면 법원에 가서 확인 판결문을 받아와야 하는 등 과정이 매우 번거롭다"며 "또한 부모와 혈연관계임을 밝히는 데 필요한 유전자 검사 비용이나 법률적인 비용 문제 등으로 출생신고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소 교수는 그러면서 "이런 경우 정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촘촘하게 제도적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같이 인구밀집도가 높은 나라에서 제주의 출생미등록 세 자매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무관심 때문"이라며 "자매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주변 사람들도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현대사회에서 방관자 효과가 커지고 있다. 주변에서 적극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