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군 장병 위문편지에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 조롱 담겨
시민들 "군에도 휴대폰 있고, 부모에게도 편지 잘 안쓰는 세대…일부 여고에만 남아 있어"
"굳이 조롱하는 내용을 쓸 필요는 없었다…근본적으로 시대착오적 발상이 야기한 문제"
전문가 "온라인상에서 모르는 사람과 장난쳤다 식으로 수용해야…남녀갈등 확산 경계"
지난 11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이 군 장병에게 보낸 위문편지의 내용이 공개됐다. 작성일이 지난달 30일로 표기된 이 편지에는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 조롱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학교 측은 봉사활동이란 명목으로 위문편지 쓰기를 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논란은 확산되고 시민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일하는 김모(29)씨는 "요즘은 군대에서 휴대폰도 사용할 수 있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며 "아직까지 위문편지라는 문화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왜 이런 문화를 유지해서 서로 기분 나쁜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학교가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20대 직장인 전모씨는 "위문편지라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부모님께도 잘 쓰지 않는 편지를 아이들에게 쓰게 하면 반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편지 속의 조롱하는 내용에 대해 비판 목소리도 쇄도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이모(17)양은 "학생과 군인,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간다"면서도 "어차피 써야할 편지라면 좋은 내용을 적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50대 주부 전모씨는 "옛날에는 모든 학교에서 위문편지를 쓰는 문화가 있었다"며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이런 이 문화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여고에게만 남아있는 문화라면 더욱 문제"라면서도 "다만 이번 편지 내용을 보면 여고생이 잘못한 것 같다. 굳이 조롱하는 내용을 쓸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시기적으로 전투기 추락 사고와 겹쳐 더 논란이 더 커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20대 남성 김모씨는 "학창 시절에 위문편지를 쓴 적도, 군대에 있을 때 이런 위문편지를 받은 적도 없다"며 "일부 학교에만 남아있는 문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에 전투기 추락 사고 같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위문편지 문제가 발생해서 더 불거졌다고 생각한다"며 "어느 한쪽이 잘못했다기보다는 없어져야할 전통이 남아있어 생긴 문제 같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문제가 남녀 갈등까지 갈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봉사활동 시간이라는 대가가 있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강제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반감이 생겼을 수 있다"며 "젠더 갈등까지 갈 문제도 아니고 본래의 의도대로라면 정말 좋은 취지만, 자발적이 아니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이어 "위문편지라는 문화가 남아있는 이상 이런 부작용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래 이어온 구시대적 문화가 바뀌지 않은 것에 우선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남녀 갈등까지 번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제는 군인들도 휴대폰 반입이 가능하고, 사적으로도 편지를 주고받는 경우가 적다. 연락할 방법이 편지밖에 없을 때 존재하던 유물 같은 문화"라며 "무작위로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펜팔처럼 편지를 쓰는 것은 이 시대와 맞지 않는 문화"라고 지적했다.
내용에 관한 논란에 대해 정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모르는 사람과 장난을 쳤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녀갈등으로 번지면 안 된다"며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제라도 알고 고쳐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논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 금지해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서울시교육청 게시판에 '미성년자에게 위문편지를 강요하는 행위를 멈춰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글은 각각 13만여명, 2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학교 측은 입장문을 통해 "2021학년도 위문편지 가운데 일부 부적절한 표현으로 행사의 본래 취지와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국군 장병 위문의 다양한 방안을 계속 강구하고 있으며, 향후 어떠한 행사에서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와 통일 안보의 중요성 인식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