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정 바뀐 게 없는데…입장 따라 달라
명문화·제도화 된 해운법 개정 논의 시급
합법적 공동행위냐 불법적 담합이냐를 놓고 부처 간 엇갈린 견해로 갈등이 노출된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한-동남아항로 해상 운임 과징금 부과 사건은 여러 뒷말을 남겼다.
공정과 원칙이라는 공정위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담합사건에는 담합이라는 딱지를 달고도 그 누구도 경제적인 이득을 본 자가 없으며, 사용자인 화주들도 선사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독려하고 있는 등 기존의 담합 건과는 무척 다른 양상이다.
이 공동행위를 통해 운송료를 인하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며 독과점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공동행위를 제한하고 시장에만 맡길 경우 완전경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주‧유럽항로와 같이 대형선사의 과점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관리 감독권이 있는 해양수산부는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는 과거 1978년부터 몇십 년간 쭉 이어온 해운업계 특수성을 감안한, 해운법에 따른 관행이자 합법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해운법상 이들의 공동행위를 30일 내 해수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인데, 공정위는 23개 선사들이 122건을 신고하지 않고 담합했다고 봤고, 해수부는 19건의 기본적 공동행위가 포괄적으로 신고됐으며 122건은 세부 사안으로 신고가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두 부처의 법 해석의 차이가 국내외 선사들을 불법 운임 담합을 일삼다가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됐다.
대한민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99.7%를 해상운송으로 처리하고 있어, 해운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하고 육성하고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한진해운 사태 때도 해운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해수부의 주장을 묵살한 채 금융논리만으로 접근, 1위의 국적선사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한국해운이 그간 쌓아올린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린 바 있다.
이후 우리는 꼭 필요한 기간산업의 재건에 나섰고,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며 가까스로 회생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국익과 해운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공정거래법이 등장했다.
공동으로 원가를 낮추고 무한시장경쟁에서 독과점을 막아보겠다는 공동행위가 법적인 제재를 당할 경우 영세선사들은 그야말로 설 자리가 없는 셈인데, 그럼 공정한 룰인지도 다시 고려해봐야 한다.
공정위의 판단대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선사들의 운임 담합 관행을 타파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라면, 진즉 시정명령과 조치를 행해 선사들에 주지를 시켰어야 했다.
또 ‘수많은 수출입 기업들인 화주들의 피해가 예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의미라면 왜 화주들은 단체 입장문을 내고 “그간 공동행위에 따라 피해를 본 것이 없으며, 국적선사들과 국내화주 간 원활한 협력 관계를 지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는지, 공급과잉시장에서 화주가 가격을 결정하는 해운업 구조상 안정적인 물류서비스에 어떤 게 필요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들의 행위에는 공동행위가 폐지되면 외국계 대형선사의 과점화가 심화되면서 운임이 올라 화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물론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은 8000억원 대에서 962억원으로 감면 조정돼 여타의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도 있지만 이에 따른 후폭풍이 예고돼 그리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전 세계로 서비스하는 해운업 특성상 한 국가에서 불공정행위로 제재하면 관련 국가에서 연쇄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미 외국선사들은 국내 영업을 축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과 중국 항로의 조사에 맞서 이들 국가들도 자국 내에서도 강력한 조사를 예고했으며, 영세 국적선사들은 과징금 납부를 위해 선박 등 핵심 자산 매각이 불가피해 생존마저 위태로운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해운법 개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으로 명문화, 제도화 되지 않을 때, 부처 간 해석 차이 또는 갈등, 업계 반발 등의 혼란은 되풀이된다.
복잡다단한 해운상황과 물류시장을 고려하고 그간의 노력들이 빛을 발하면서 미래의 불공정 행위를 엄단할 전문가들의 법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