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우리 산업경쟁력 저하 초래
반도체·화학 등 초정밀기업에 치명적
탄소중립 달성 현실적 방안은 'CF100'
5월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밑그림을 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면 폐기할 것과 수정·보완할 것, 계속 유지할 것, 3개 등급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인데 에너지 정책은 윤 당선인이 현 정부와 강하게 대립각을 세워온 만큼 전면 대수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한국형(K)-RE100' 제도가 그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가입이 늘고, 하위 공급사들에 대한 이행 요구도 강해지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기업이 좀 더 쉽게 RE100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K-RE100 제도를 도입했다.
K-100 제도는 우리 기업에 심각한 부담을 안기면서도 정작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K-RE100 이행 방법은 ▲한전으로부터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구입하는 '녹색프리미엄'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이행에 활용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한전의 중개를 거쳐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력소비자가 직접 계약을 맺는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전력 소비자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지분 참여' ▲자가용 신재생에너지 설비로 직접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사용하는 '자가 발전' 등 다섯 가지다.
전기소비자들이 택한 K-RE100 방식 대부분은 녹색프리미엄이다. 지난해 말 기준 K-RE100에 참여한 71개 기업 중 94%가 녹색프리미엄을 이용했다. 녹색프리미엄은 전기소비자가 일반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프리미엄'을 얹어 좀 더 비싼 가격으로 한전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녹색프리미엄은 다른 방법에 비해 가장 저렴하게 재생에너지 전기를 살 수 있지만 기존 설비를 기반으로 쓰는 것이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새로 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조달했다는 인증은 되지만 배출권 거래제와 연계되지 않아 실제로 온실가스를 감축했다고 볼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는 최근 급격히 가격이 오르고 있어 녹색프리미엄(10원)보다 5배 정도나 비싼 상황이다.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은 전기소비자와 재생에너지 발전사 사이에서 한전이 망이용료와 각종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10배 가까이 비싸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는 PPA 방식은 가격 문제로 실적이 0건이다. K-RE100이 1년간 기업의 돈만 거두고 실제 온실가스 감축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전기의 품질이 떨어지는 점은 기업 입장에서 치명적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계통의 주파수 안정(일정한 전력량을 흘려 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져 전기 품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려서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때문에 전력 생산이 적은 날을 대비한 보조 발전소가, 넘칠 때를 대비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한데 전기를 보내고 받는 과정에서 전기의 품질은 더 훼손된다.
반도체·화학·바이오 등 완벽히 통제된 환경에서 고도의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기업들은 질 좋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나노미터 단위 차이 하나에 제품의 품질과 효율이 좌우되는 초정밀 산업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외부에서 공급받는 전원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세계 최고 수준의 비상디젤발전기(Emergency Diesel Generator)를 구축하고 있다.
이같이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 산업경쟁력을 좌우할 결정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만을 써야 하는 RE100 가입을 강요받아 왔다. 국내 5대 기업(현대자동차·SK·롯데·LG·삼성) 중 공식적으로 RE100 가입을 공식화하지 않은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 중소·하청기업들도 국내·외 대기업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을 받고 있어 고충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RE100 가입 예시로 드는 글로벌기업인 애플, 구글 등은 비교적 전력 품질에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회사에 가깝다. 반도체, 석유, 섬유, 바이오 등 질 높은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우리 기업과 비교하는 건 무리수다. 우리 산업의 깊은 곳을 헤아리지 못한 아마추어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만으로 공급하면 산업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지난달 대선후보 토론에서 RE100 대응 방안과 관련한 질문에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며 "신재생에너지를 고도화하는 건 디지털이나 데이터, 바이오 융합 기술 있어야 고도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과감하게 한국형 RE100을 폐지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2050 탄소중립 계획을 합리적으로 손봐야 한다. 원전 50~60%에 재생에너지 30~40% 비중을 가져가는 CF100(Carbon Free 100%)이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건국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평가받는 에너지 분야의 정상화가 윤석열 당선인의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