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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피해에 ‘정신적 피해’까지…유통가, 화물연대 불법 파업에 피멍


입력 2022.06.14 15:36 수정 2022.06.14 15:45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째 이어져

도매상 차량 진·출입 지연, 교통체증↑

유통업계는 물론 자영업자까지 불편초래

거리두기 해제 이후 막대한 피해 가시화

화물연대 차량이 하이트진로 이천 공장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막아 차량 이동에 어려움이 야기되고 있다.ⓒ독자제공

“파업을 하더라도 주변에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 이후 전국에서 화물 운송 지연에 따른 피해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는 물론 불법파업 현장 인근 주민들의 정신적 피로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타당한 절차를 밟는 것이 순리이자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이를 무시하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식의 떼쓰기를 일주일 넘도록 이어가면서 국민 공감대는 커녕 비난만 거세지고 있다.


1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현재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인근 도로는 화물연대가 불법으로 주차한 5톤 차량으로 점거됐다.


이 일대는 평소 차량 이동이 많은 곳인데 불법주차까지 겹치면서 직접 소주 운반에 나선 도매상과 편의점 등 유통 자체 차량들도 진·출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4차선 도로는 겨우 일렬 운행이 가능한 정도지만 2차선 도로에서는 경찰이 배치됐음에도 수시로 교통 마비가 발생하고 있다. 이 구역 불법주차차량을 담당하는 이천시청에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역시 화물연대 시위로 도매상 차량 진·출입이 지연되고 있다.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은 하이트진로 소주 생산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기지다. 현재 양 공장에서의 소주 출고는 평소 대비 6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기업들이 대체 운송 차량까지 투입하며 파업에 대응하고 있지만,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물차량 통행을 방해하거나 출입구 봉쇄 시도 등 업무 방해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불법 주차로 인해 교통 정체도 심각하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 인상 등 대외적 요인에 따른 경제 위기 속에서 생산 차질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부담은 눈덩이 처럼 불고있다.


급기야 진로노조는 지난 9일 '화물연대파업 관련 진로노동조합입장'을 내놨다.


진로노조 측은 "진로 노동조합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좌시할 수 없다"며 "집행부는 조합원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모든 조치를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화물연대 차주들의) 파업과 정문봉쇄로 인해 지난 3일 8시간 동안 이천공장 노동자들의 조업이 중단됐고, 6일에는 24시간 근무를 못 해 임금손실이 발생했다"며 "차주들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파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이천공장 노동자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짜 약자에게 피해가 전이된 셈이다.


최근에는 소주에 이어 맥주도 물량 부족 현상 발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비맥주 역시 하이트진로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오비맥주는 일시적으로 지입차를 동원하고 주류도매사가 직접 공장으로 와서 물량을 출고시키고 있지만 출고량은 평시 20%에 불과한 상황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변에 불법주차해둔 차들 때문에 교통정체로 인해 일반 차량들도 피해가 크고 도매사나 용차 역시 공장 진출입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화물연대 파업을 반대하기 보다는 파업을 하더라도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그는 또 “명분없는 파업에 피해만 커지고 있다”며 “초반에는 움직이는 차에 달려들고 달걀을 던지거나 차 앞에 드러눕는 건 기본이고, 마이크를 통해 상대 기사에게 욕설을 뱉기도 했는데 경찰 기동대 투입 후 그나마 길을 막는 정도로 완화된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울산지역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총파업 선전전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뉴시스

편의점을 비롯한 유통업계 역시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소주 공급 차질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편의점들은 연일 자체 차량을 하이트진로 공장으로 직접 보내 물량을 공수하는 등 불편을 감내하는 중이다.


생수 시장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삼다수 운송에도 차질이 빚어지며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제주항 봉쇄는 해제됐지만, 이번에는 육지에 도착한 배에서 내린 삼다수를 화물차로 운송하는 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주말 기준 운송률이 평시의 4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편의점업계의 경우 삼다수 재고 물량이 아직은 충분해 발주 제한을 걸지는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재고 물량이 소진될 때를 대비해 백산수 등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라는 안내문을 가맹점주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닭고기와 가공식품, 식자재 등 먹거리 수송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일부 제품이 출고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대체 물류의 비용 상승으로 가격 인상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반응이다. 장기화되면 수출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프로세스가 엉망이 된 상황”이라며 “생산된 제품이 제대로 출고되지 못하다 보니 업무와 영업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항구에 적재되는 물량 대비 내륙 간 운송되는 물량이 현저히 적어 항구 일대도 대혼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주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며 주점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소주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업주들은 판매 주종을 변경하거나 사재기를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12일 오후 서울 시내 식당에 술병박스가 놓여있다.ⓒ뉴시스

식당 등 자영업자들의 도미노 피해 역시 심각하다.


형편이 나은 일부 자영업자들은 미리 비축한 물량으로 버티고 있지만, 재고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일부는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공장과의 직거래까지 시도하고 있다.


급기야 다음주에는 아예 소주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일부 업주들은 공장과의 직거래를 시도하거나 주종을 변경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사재기를 시도하려고 해도 공급분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충분한 물량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입었던 타격을 겨우 회복하려고 하는 시점에 또 고난이 생겼다는 반응이다.


식자재값 상승으로 이윤이 줄어든 상황에서 주류 수급까지 걱정해야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것이다. 이번 파업이 물가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영등포구에서 고기집을 운영하는 이모(50대)씨는 “소주 재고량이 얼마 남지 않아 고민”이라며 “도매상도 ‘방법이 없다’고 해 직접 공장에 갈 생각도 하고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트럭을 갖고 있는 지인들에게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가도 올라 고기를 팔아도 남는 게 없다. 그나마 술을 팔아 이윤을 챙기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날벼락”이라며 “2년 넘게 빚만 쌓이다 이제 겨우 손님이 찾아오는데 소주 공급이 끊기면 장사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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