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물가 5.2%↑…상승 폭 확대
무역수지 적자 폭 역대 최대
IMF, 한국만 경제성장률 하향
기업경기실사지수 5개월째 하락
올해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연초부터 대부분의 경제 지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시장 불안 심리를 부추긴다. 정부는 경제위기 재현 가능성이 작다고 말하지만, 지표는 경기침체 고통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신호한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2% 올랐다. 전기와 가스, 수도 등 공공요금이 평균 28.3% 오른 영향이다.
지난해 10월 5.7% 이후 11월과 12월 각각 5.0%를 기록하며 줄어들었던 물가 상승 폭이 다시 확대됐다. 전월 대비 물가 상승률(0.8%)로는 2018년 9월(0.8%) 이후 가장 높았다.
5%대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5월(5.4%) 이후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연간 물가관리목표(2%)의 두 배 이상 되는 고물가 상황이 계속되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는 고환율과 고유가, 확장 재정 등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소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예상 가능한 물가 상승이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 세계 주요국 인플레이션(물가 지속 상승) 등 우리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의 외부 요인이 좋아지는 상황에서도 다시 상승 폭이 커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번 물가 상승은 공공요금 인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문제는 앞으로도 공공요금은 계속 오를 예정이라는 점이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비 등은 이미 올랐거나, 향후 인상이 예정돼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내수 경제에서 물가가 문제라면 대외 경제에서는 무역수지 상황이 심각하다. 글로벌 경기둔화가 지속하고 반도체 업황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수출 실적이 4개월 연속 감소했다.
특히 무역수지가 외환위기 사태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처음으로 11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적자 폭이 크게 늘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126억9000만 달러(약 15조659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지금까지 계속 적자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반도체 수출 급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메모리반도체 제품값이 수요 약세, 재고 누적 등으로 급락하면서 전년 같은 달 대비 44.5% 떨어졌다. 이는 1월 수출 감소분의 52%를 차지하는 규모다.
특히 주요 반도체 제품가격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산업부 등 관계 기관에서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수출 감소와 대규모 에너지 수입 지속 등이 복합 작용하면서 무역적자가 확대됐다”며 “대규모 무역적자는 우리 경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관련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위기 상황은 국제기구 경제성장률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31일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을 발표하면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보다 0.2%p 높이고 한국은 0.3%p 낮췄다.
IMF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제개)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견고한 소비·투자 등으로 성장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 경제와 밀접한 국가들이다. IMF가 이들 국가 성장률을 높이면서 우리는 낮췄다는 것은 세계 경제는 기대보다 나아질 것으로 예상한 반면, 한국 경제는 갈수록 불안하게 바라본다는 의미다.
IMF는 한국 경제성장률 하향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타 고피나스 IMF 수석부총재를 면담했는데 이 자리에서도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다만 면담 이후 고피나스 부총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전반적인 금융 여건의 긴축, 한국에서도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올해 말까지 소비 쪽에 조금 영향을 줄 것 같다”며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대외 쪽 수요가 줄어든 점, 주택 부문의 둔화 등에서 취약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각종 경제지표 하락은 기업인들의 경영 심리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1월 전(全)산업 업황 BSI는 69로 지난달 74보다 5p 하락했다. 1월 업황 BSI는 2020년 9월(64)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020년 3월(-11p) 이후 월간 기준 가장 큰 하락 폭이다.
기업경기실사지수는 기업체가 느끼는 체감경기로, 숫자가 100 아래로 갈수록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업황 BSI는 지난해 8월 81을 기록한 이후 9월(78), 10월(76), 11월(75), 12월(74), 1월(69)까지 5개월째 하락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커지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라며 “현재와 같은 수준이 지속한다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