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甲은 은행 아닌 금감원
적반하장 비난 자초한 과거
"적반하장도 유분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을 향해 내놓은 이른바 '우월적 지위' 비판에 한 금융사 현직자들은 내로남불을 얘기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누구보다 우월적 지위를 행사해 온 존재의 자가당착 화법에 대한 실소였다.
이 원장의 은행들을 향한 공격적 발언은 날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며칠 전 한 세미나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권의 영업 방식에 대해 "약탈적"이라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과점 시장 구조를 깨고 완전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며 은행권에 선전포고를 했다.
고금리를 통한 이자마진으로 홀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공공의 적 프레임에 은행권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정부의 금융지원 요구,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지속돼 온 각종 협조 요청에 매번 군말 없이 자금을 뒷받침해 왔던 은행들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은행들의 이자 마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다는 게 우리 금융당국의 입장이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미국과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은행의 주요 금융 선진국 예대금리 차이를 거론하며 우리나라 은행권이 이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대금리차는 말 그대로 대출 이자율에서 예금 금리를 뺀 값으로, 은행의 이자 마진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로부터 한 해도 지나지 않아 금융당국의 수장 중 한 사람인 금감원장이 돌연 은행권의 폭리가 심하다고 지적하고 나선 건, 금융권에서 누가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보여주는 반증이다. 금감원장이 갑자기 말을 바꾸더라도 누구 하나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는 시장의 현실은 금융시장의 진정한 갑(甲)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침묵 속의 아우성이다.
오히려 금융시장 갑질의 대명사는 줄곧 금감원이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금융사를 향해 감독 칼날만 휘두르는 금감원의 행태는 말 그대로 무소불휘였다. 계속되는 사모펀드 투자자 손실 사태를 두고 금융사에 잇따른 중징계를 내리면서도, 그와 연루된 자신의 내부 조직원들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대처로 일관한 현실은 이런 이중 잣대를 다시 한 번 드러낸 대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누군가를 설득할 때 로고스와 파토스, 이토스란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논리를 앞세우는 로고스나 감정을 움직이는 파토스보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의 삶이 증명하는 이토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금감원장이 진정 권위를 세우고자 한다면 본인의 우월적 지위부터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