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넘게 대한축구협회를 감사했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몽규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하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실효성에 물음표가 달리고 모호한 내용들이 섞여 축구팬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문체부는 5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현준 감사관은 브리핑을 통해 “축구협회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지난 7월 이후 3개월여 동안 감사를 진행한 결과 총 27건의 위법 행위 및 부당한 업무 처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큰 책임이 있는 정 회장을 비롯해 김정배 상근부회장, 이임생 기술총괄이사 등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제명, 해임)의 중징계를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한 달 안에 징계 의결 후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최 감사관은 “현재 규정이 문체부는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축구협회 공정위원회에서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강제성이 동반되는 요구라는 점에 무게를 뒀지만, 축구협회 내에서 정몽규 회장의 ‘파워’를 볼 때 실제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정 회장의 징계는 축구협회 공정위원회가 심의하고 의결한다. 정 회장이 임명한 공정위원들이 실제로 중징계를 결정할지 알 수 없다.
협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강조하는 FIFA를 의식한 탓에 문체부의 축구협회 감사 결론이 실효성 없는 요구라는 지적에 대해 문체부는 보조금 지원 제한 등 추가 조치 가능성도 언급했다.
문체부는 “이행이 안 됐을 경우에는 이행감사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 감독 부서인 체육국에서 여러 정책 수단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상 문체부는 징계를 요구할 권한이 있고, 그에 대한 판단은 축구협회 공정위가 내리게 돼 있다. 협회가 국민 눈높이·여론에 맞춰 바람직한 판단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실효성에 물음표가 달린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중간 브리핑에 이어 문체부는 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을 지적했다.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성 논란에 대해 문체부는 권한이 없는 자가 감독 추천 권한을 행사했다고 결론 내리면서 "대한축구협회가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를 다시 가동해서라도 재선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자를 다시 추천해 이사회에서 선임하는 방안 등을 포함하여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통보했다”며 “홍 감독과 체결한 계약을 유지하거나 해임할지 여부 등 세부적인 방식은 협회가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 선임 취소 요구 등의 조처를 기대했던 일부 축구팬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홍 감독을 다시 선임하더라도 전력강화위원회의 후보자 추천과 이사회 선임 과정을 다시 밟으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협회가 절차에 따라 규정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문체부는 선임 과정에 부적정이 있다고 지적하며 개선을 통보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축구협회가 결정한다. 이대로라면 ‘2026 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을 지휘하고 있는 홍 감독이 다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는 홍명보 감독은 빠듯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일 명단을 발표한 홍명보 감독은 오는 10일 선수단과 함께 인천공항에 소집, 11일 쿠웨이트 원정길에 오른다.
문체부가 축구협회에 대한 구체적인 조처를 하지 못한 것은 독립 자율성을 강조하는 FIFA(국제축구연맹)의 ‘제3자 간섭’ 조항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축구협회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던 지난 7월 시작된 문체부 감사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축구협회는 ‘재심의 요청’ 등을 검토 중이다. 향후 문체부와 협회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