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보다 비싸지만 선호도 높아…국내 소비자 '車부심' 공략
'쉐보레 = 국산차' 인식 한계…신규 브랜드로 '수입차 대접 제대로'
픽업트럭 특화된 GMC로 국내 픽업트럭 시장 성장 대응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이 기존 대중차 브랜드 쉐보레와 럭셔리차 브랜드 캐딜락에 이어 RV(레저용 차량) 전문 브랜드 GMC를 한국 시장에 들여오기로 결정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내년 중 대형 픽업트럭 시에라(Sierra)를 시작으로 GMC 브랜드 차종들을 순차적으로 들여올 예정이다. 앞서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지난 12일 ‘GM 미래 성장 미디어 간담회’에서 GMC 브랜드의 국내 론칭 계획을 밝혔다.
GMC는 GM 내에서도 정통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와 픽업트럭 등 RV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100년 넘은 역사를 지닌 브랜드다. 스텔란티스(옛 크라이슬러) 산하 RV 브랜드 지프(Jeep)에 비견되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이미 쉐보레 브랜드가 대부분의 차종 및 차급을 커버하는 상황에서 굳이 제 3의 브랜드를 들여올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현재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중형 픽업트럭 쉐보레 콜로라도의 형님 격인 실버라도를 들여와 구색을 맞추지 않고 GMC의 동급 픽업트럭 시에라를 먼저 들여온다는 점에 의문부호가 찍힌다.
이에 대해 한국GM 관계자는 “시장 선호도 조사를 주기적으로 한 결과 국내에서 GMC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면서 “시에라의 경우 이미 그레이 마켓(직수입)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실버라도에 비해) 많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GM은 국내 소비자들이 고가의 수입차를 구매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는 럭셔리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가 ‘톱3’를 형성하며 연간 수만 대씩 팔리고 있고, 이들보다 비싼 최고급 브랜드 벤틀리, 롤스로이스도 수백 대씩 팔린다. 슈퍼카 브랜드 포르쉐도 올해 10개월간 7000대 이상 팔렸다.
특히 벤츠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비싼 플래그십 세단 S클래스는 올해 10개월간 8118대의 판매실적을 올리며 연간 1만대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장 규모 대비 고급차 구매력이 세계 최상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M은 국내 생산 제품과 해외 수입 제품을 병행 판매하는 ‘투 트랙’으로 한국GM의 수익성을 끌어 올린다는 전략을 수립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가 보유한 다양한 브랜드의 ‘비싼 차’들을 들여와 한국 소비자들의 ‘차(車)부심’을 공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GMC는 럭셔리 브랜드로 분류되진 않지만 RV 차종에서는 쉐보레보다 상위에 포지셔닝돼 있다. 대형 픽업트럭에서도 GMC 시에라가 쉐보레 실버라도보다 비싸다. 더 저렴한 차종을 들여오기보단 조금 비싸더라도 선호도가 높은 차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쉐보레가 ‘국산차’로 인식돼 있다는 점도 GMC 브랜드 도입의 배경 중 하나로 분석된다.
한국GM에서 쉐보레 브랜드 차종을 생산하다 보니,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판매하는 쉐보레 브랜드 차종에 대해서도 ‘수입차’ 프리미엄을 오롯이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쉐보레 이쿼녹스가 같은 차급의 수입차 폭스바겐 티구안보다 훨씬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상위 차급의 국산차 현대차 싼타페와 비슷한 가격이라고 외면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쉐보레 카마로가 미국에선 포드 머스탱의 라이벌이지만, 국내에선 그만큼 대접을 못 받는 것도 한국GM으로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다.
이럴 바에는 아예 온전한 수입차로 인식될 만한 새로운 브랜드를 들여오는 게 한국GM으로서는 판매량 면에서나 가격 책정의 유연성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국내 픽업트럭 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시장은 미국과는 달리 도로와 주차공간이 좁고 DIY(가구 등의 자체제작)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아 픽업트럭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레저 붐이 일면서 적재공간이 넓은 픽업트럭이 각광을 받고 있다.
유일한 국산 픽업트럭인 쌍용차 렉스턴 스포츠는 지난해 3만대 넘게 팔렸고, 한국GM이 수입해 판매하는 쉐보레 콜로라도는 그보다 훨씬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 지난해 5000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픽업트럭 분야에서 쉐보레보다 전문성을 지닌 GMC의 차종들을 들여올 만한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판단이 설 만한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오프로드 끝판왕으로 불리는 GMC 허머(hummer)의 전기차 버전인 허머 EV를 들여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미 GM은 2025년까지 한국 시장에 산하 브랜드 전기차 10종을 출시하겠다고 선언했고, 허머 EV는 현재 GM 산하 브랜드에서 출시했거나 개발이 완료된 전기차 4종 중 하나다.
한국GM 관계자는 “GMC 브랜드 론칭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여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시에라 이후 전기차를 포함한 GMC 브랜드 차종의 국내 출시 여부나 시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