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이어 롯데까지 본격 확장 나서
기존 와인 수입업체 호실적에도 ‘긴장’
금양인터·나라셀라 등 “상장 추진” 맞불
최근 ‘유통 공룡’ 롯데와 신세계가 앞다퉈 와인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수입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와인시장이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력이 있는 두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 만큼 국내 와인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15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복수의 해외 와이너리를 대상으로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와인의 수입, 판매에 그쳤던 롯데칠성이 직접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를 직접 운영, 양조까지 나서기로 한 것이다.
당초 계획은 국내 와이너리를 설립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국내 풍토상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해외 와이너리로 시선을 돌렸다. 강수량이 많은 국내 여름의 특성상 당도가 높고 껍질이 두꺼운 양조용 포도가 나오기 힘들다는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앞서 신세계는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미국 와이너리 ‘셰이퍼 빈야드’를 3000억원에 인수했다. 한국 유통 대기업이 미국 와이너리를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직접 생산을 통해 경쟁사와 차별성을 두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셰이퍼 빈야드는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50년 이상 된 나파밸리의 대표적인 고급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로 200만에이커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힐사이드셀렉트’ 등과 같은 최고급 와인 5종도 생산된다. 나파밸리는 미국 와인의 자존심으로 여겨진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해외 와이너리 인수는 해당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 물량 확보 등의 장점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해당 와이너리가 가지고 있는 와인 양조, 블렌등 등 와인에 대한 노하우 전수 등에 더 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 와인시장 폭발적 성장세…“향후 시장성도 밝아”
롯데-신세계의 이런 전략은 와인이 앞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와인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와인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재작년 8000억원대였던 국내 와인 소매시장 규모는 올해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내 와인 시장에서 유통되는 와인 중 90% 이상은 수입 와인인데,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수입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와인 소비의 증가는 코로나19 속 ‘홈술’ 열풍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홈술의 대표 주자는 맥주였지만,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가성비 와인’으로 시장 저변이 확대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소셜미디어(SNS) 인증사진 등의 문화 역시 시너지를 냈다.
이런 가운데 롯데-신세계의 와이너리 인수 및 인수 검토로 인해 국내 와인 시장의 판도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측된다. 막대한 자금과 국내에 고르게 분포된 오프라인 매장 등을 앞세워 시장확대에 나설 경우 기존 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만 하더라도 미국 와이너리 인수를 디딤돌 삼아 신세계L&B의 와인 수입 역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백화점, 이마트, 이마트트레이더스, 이마트24 등을 앞세워 신세계그룹이 와인 구매 협상에 큰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 대형 유통업계엔 ‘기회’… 기존 수입 업체들은 ‘위기’
국내 와인 수입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수입업체들은 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 외형을 키우는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조달된 자금을 통해 다양한 와인을 수입, 판매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금양인터내셔날은 올해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120여개 브랜드와 500여종의 와인을 수입·유통하는 나라셀라 역시 최근 신영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IPO 추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스팩 합병 방식으로 상장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와인 수입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하나의 산업군으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 집콕에 따른 홈술 트렌드가 산업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만 영세한 와인수입업체들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과거 와인 수입업체가 자사 오프라인 매장과 대형마트 주류코너에 납품했던 것과는 달리, 유통기업이 직접 와이너리와의 계약을 통해 물량을 수주하고 자사 유통망을 활용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와인 수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량 개런티’다. 와이너리에서 일정 규모의 물량 구입을 수입사 측에 요구하면 이를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역량을 중시한다. 이 능력에 따라 와인 수입사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저가 와인을 통한 소비자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시장 전반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와인 수입업체가 가져갈 수 있었던 매대를 대형마트가 자사 제품으로 채워넣으면서 영세한 업체들은 납품가를 낮추기 위해 무리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 대기업이 수입을 하지 않고 자본력을 앞세워 해외 와이너리를 적극 인수하는 행보를 보일 경우 가장 큰 우려는 해외 파트너의 수입 파트너 변경으로 인한 기존 판매 품목의 취급이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와이너리 인수는 대기업과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라 중소업체에서는 포트폴리오 관리를 단단히 해 놓는 식으로 방어를 하고 있다”면서 “소위 말하는 아영, 금양, 나라셀라, 신동과 같은 회사들의 경쟁력은 국가별 상품 구성인데,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이 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