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 발표
식량안보・수급균형 달성 정조준
2027년까지 밀가루 10% 대체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분질미를 앞세워 쌀 시장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더불어 식량안보와 쌀 수급균형 강화라는 두 토끼를 잡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9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분질미를 활용해 쌀 가공식품 산업을 활성화함으로써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 수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정 장관은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오는 2027년까지 가공 전용 쌀 종류인 분질미 20만t을 공급해 밀가루 연간 수요인 약 200만t의 10%를 대체 하겠다”며 “윤석열 정부 농식품 분야 핵심 국정과제인 식량주권 확보 일환으로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그동안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쌀 가공산업을 지원해 왔다. 이를 통해 쌀 가공산업이 성장하고 국내외 시장 규모도 확대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쌀의 가공적성 한계, 높은 가공 비용 등 제약 요인으로 인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시장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쌀가공산업 시장 규모는 2010년 4조1000억원, 2020년 7조3000억원이다. 수출은 2019년 10억86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6억4000만 달러로 성장했다.
정 장관은 “주로 떡류‧주류‧즉석식품류 등에 국한된 쌀 가공식품 범위를 넓히고,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 수요 일부를 쌀로 대체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공 전용 쌀 종류인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게 됐다”며 “분질미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쌀 종류다. 2002년부터 남일벼 품종에서 분질 돌연변이 유전자를 탐색해 수원542, 바로미2 등이 분질미 품종으로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일반 쌀은 전분 구조가 밀착돼 단단하기 때문에 가루를 만들기 위해 습식제분을 하는 데 반해, 분질미는 밀처럼 전분 구조가 둥글고 성글게 배열되어 있다. 건식제분이 가능해 제분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전분 손상은 적어 일반 쌀가루보다 밀가루를 대체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습식제분은 쌀을 물에 불려(1∼2시간 침지 공정) 건조‧제분, 폐수처리(쌀 4~5배 용량)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전분 손상이 크고 비용은 높아진다. 반면 건식 제분은 일반 쌀을 그대로 제분한다.
이번 대책은 오는 2027년까지 분질미로 연간 밀가루 수요(약 200만t)의 10%(20만t)를 대체해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 수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안정적 분질미 원료 공급체계 마련 ▲산업화 지원 ▲쌀 가공식품 소비 기반 확대를 3대 주요 정책과제로 꼽았다.
세부적으로는 2027년까지 분질미 20만t을 시장에 공급한다는 목표 아래 4만2000ha 수준 일반 벼 재배면적을 분질미로 전환한다. 올해는 기존 분질미 재배 농가, 농촌진흥청과 도농업기술원 시험포장을 활용해 분질미 재배면적을 작년 25ha의 4배 수준인 100ha로 확대한다.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내년부터 공익직불제 내에 전략작물직불제 신설을 추진해 참여 농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밀 전문 생산단지(2022년 51개소) 중심으로 밀-분질미 이모작 작부체계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정 장관은 “일반 쌀은 주로 5월 중순~6월 중순경 이앙을 많이 하는 데 반해 분질미는 6월 하순경이 이앙 적기”라며 “밀 수확 시기인 6월 중순까지 알곡이 충분히 여물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할 수 있어 작부체계 상 밀과 쌀의 이모작 경합 문제 해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농진청을 중심으로 품종과 재배기술을 개선하고 지역별‧단지별 전담 기술지원 체계를 운영해 농가가 안정적으로 분질미를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도 마련된다.
산업화 지원의 경우 매년 3~5월에 농가별로 분질미 매입 계약을 체결한 후 수확기에 농가가 생산한 분질미를 공공비축미로 매입하고 이를 밀가루를 분질미로 대체하고자 하는 실수요업체에 특별 공급한다.
또 쌀가루를 활용해 전략적으로 소비 가능한 제품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식품기업 등 대량 수요처와 연계한 연구개발과 사업화에 박차를 가한다. 단기적으로는 분질 쌀가루 특성 평가‧연구와 함께 식품업계 등 대량 소비처에 분질 쌀가루를 시료로 제공해 현장 시험과 제품개발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이다.
정 장관은 “올해는 분질 쌀과 쌀가루 1t을 CJ제일제당‧농심미분‧농협오리온 등 식품‧제분업체와 제과제빵업체에 제공해 이달 중 제분 특성과 품목별 가공 특성을 평가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이를 100t 수준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케이크, 카스텔라, 제과·과자류 등 비발효빵류, 밀가루 함량이 낮은 어묵, 소시지 등은 분질 쌀가루 전용 품목으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이다. 소면‧우동면 등 면류, 식빵 등 발효빵류, 튀김가루 등 분말류, 만두피 등은 분질 쌀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하는 제조법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기반 확대 대책에는 분질미 생산자, 소비자단체, 제분 업체, 가공업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가칭)쌀가루 산업 발전협의체’를 운영한다.
이와 함께 글루텐프리 등 쌀 가공식품에 특화된 식품인증제도를 홍보하고 쌀을 기능성 식품 원료로 등록을 추진해 프리미엄 쌀 가공식품 시장을 육성할 예정이다. 지난해 글루텐프리 세계 시장 규모는 78억6000만 달러다. 올해부터 연평균 8.1% 성장이 전망되는 유망 시장이다.
글루텐은 밀‧보리 등 일부 곡물에 함유된 단백질 종류다. 서유럽‧북미‧호주 등에서는 밀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 비중이 아시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글루텐프리 인증 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학교‧공공기관 등 대량 소비처에 쌀가루 가공제품 공급을 확대도 나선다. 다양한 행사‧매체 등을 활용한 홍보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기술자격 제과 직종 자격시험에 쌀가루 관련 과제를 추가하고 분질미를 활용한 제과제빵 기술 교류 확산도 대책에 담겼다.
이밖에 쌀 가공식품 수출을 지속 확대하기 위해 맞춤형 해외시장 정보 제공, 주요 대상 시장별 수출 유망품목 발굴, 상품화부터 해외인증, 홍보, 마케팅 등까지 단계별 지원을 강화한다.
농식품부는 이달 말까지 대책 과제별로 세부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주기적으로 관계기관 회의, (가칭)쌀가루 산업 발전협의체 운영 등 과제별 추진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정 장관은 “이번 대책으로 안정적인 가공용 분질미 원료 공급-소비 체계를 구축해 쌀 가공산업을 육성하고, 이모작을 활성화함으로써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며 “쌀 수급균형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쌀 수급 과잉으로 소요되는 비용(시장격리, 재고 관리 등)을 절감해 밀·콩 등 식량 자급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