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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입맛 따라 휘청이는 ‘예타제도’ 수술대 오른다


입력 2022.06.15 14:56 수정 2022.06.15 14:56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1999년 도입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난개발·예산 낭비 방지 긍정적 역할

정권마다 기준 없는 ‘적용 예외’ 문제

지역적 특성 반영·편익 항목 개선 필요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예비타당성제도 개편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주재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제도 개편에 나섰다. 예타 제도는 1999년 도입 이래 난개발을 막고 재정 낭비를 줄인다는 긍정적 측면과 담당 부처 자율성을 제한하고 사업 적기 추진을 힘들게 한다는 부정적 측면이 맞서왔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자신들 손익에 따라 예타를 면제하면서 제도 개선 요구가 이어져 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3일 최상대 제2차관을 중심으로 예타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기재부 공무원을 비롯해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해 예타 제도를 둘러싼 제도개선 필요성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타 제도는 대규모 공공개발사업에 대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적정한 투자 시기와 재원 규모, 재원 조달 방식 등을 검증하는 내용이다. 1999년 최초 도입했는데, 전체 사업비 500억원 이상이거나 국비가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신규 사업에 대해 예타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예타는 재정 누수와 난개발을 사전에 방지하는 목적이 있다. 예타를 ‘재정 문지기’라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도 도입 전에는 사업 시행 부처가 하는 타당성 조사로 실효성을 판단해 왔는데, 실제로는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5월 내놓은 ‘재정투자 효율화를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의 쟁점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예타 도입 전) 사업 추진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실시하는 타당성 조사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며 “사업 주관 부처가 조사 기관을 선정함에 따라 조사 항목과 평가 기준 등이 상이해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 저하 등의 문제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재정 사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예타는 재정사업 신규 투자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함으로써 무분별한 투자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한 지 20년이 넘는 동안 초기에 마련했던 사업 선정 기준이나 제도 운용 기본 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현재 국가재정법에서 ‘지역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일 때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추상적 기준 때문에 사실상 정치권이나 정부가 자신들 입맛대로 제도를 운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예타 면제 사업을 살펴보면 모두 181조5000억원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22조원 규모 4대강 사업을 ‘재해예방 및 복구 지원 등으로 시급히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예타를 면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에는 지역균형 발전 목표로 2~4개 시도 경제협력권 산업 육성 사업에 관해 예타를 면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대표 예타 면제 사업이다. 정부는 해당 사업에 대해 ‘법령에 따라 추진해야 하는 사업’과 ‘지역균형발전 등 국가 정책적 추진 필요 사업’이란 이유로 예타 면제를 결정했다.


예타 면제에 대한 고무줄 잣대 외에도 ▲사회·복지분야에 예타를 적용하는 게 바람직한지 ▲예타 경제성 분석이 비수도권에 불리하지 않은지 ▲경제성 편익 항목에서 환경성과 형평성이 저평가되고 있지 않은지 등 다양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제도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선하 공주대학교 도시융합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까다로운 예타 제도로 지역 입장에서 필요하지만 비용과 편익 측면에서 타당성 없는 많은 사업이 표류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예타 제도 자체가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사업을 걸러내 정부 예산 절감을 해왔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회·경제 여건에 맞춰 SOC 사업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편익 항목을 확대하며, 신교통수단 특성을 반영하는 등 앞으로도 제한된 SOC 재정사업 추진의 합리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수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행 예타 제도는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의사결정이 경제성 평가에 치우쳐 있다”며 “이로 인해 지역균형개발과 안전성 강화 등 국가 정책상 필요한 사업 추진이 어렵다. 환경성과 형평성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도시나 지역 특성에 맞는 평가 항목이 개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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