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호황 끝나고 주춤한 가전 수요
업계 "가전제품 아닌 가전작품으로 승부"
가성비에서 파생된 '가심비' 제품도 인기
최근 40년 이래 최고조로 치솟은 글로벌발(發) 인플레이션 등의 영향으로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가전업계는 '프리미엄 아니면 가심비'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가전 투톱 LG전자와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에 못 미치는 다소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먼저 LG전자의 경우 올해 2분기 매출 19조4720억원, 영업이익 7917억원 잠정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5% 증가했지만 반대로 영업이익은 12%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7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94%가 늘었고 영업이익의 경우 14조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1.38% 증가했지만 앞선 1분기와 비교했을 때 매출은 1%, 영업이익은 0.85%가 감소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잠잠해지며 이전처럼 '집콕' 시간이 줄어들자 가전소비량이 대폭 축소됐고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한 몫 보탠 결과라는 관측이 가장 지배적이다. 이에 가전업계는 돌파구 마련을 위해 '초고가 전략'을 취하며 프리미엄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초대형 TV 시장이다. 엔데믹 영향을 크게 받아 수요가 축소되고 있는 대표적 가전이지만,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일반 제품보다 그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LG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TV 출하량은 전년도보다 11% 감소한 2069만대로 추산되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경우 전년 대비 18% 증가한 478만대가 출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가전업계는 애매한 디자인과 성능, 가격을 가진 가전제품 대신 비싸더라도 '가전작품'을 만들겠다며 작심한 모습이다. LG전자는 TV 오브제컬렉션 라인 뿐만 아니라 냉장고, 청소기, 맥주제조기 등을 망라한 각종 생활가전제품을 내놓으며 프리미엄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한 스마트TV 운영체제(OS) 등을 활용한 구독 서비스 기반 앱 운영 시장에도 뛰어든 상태다. 지난달에는 SM엔터테인먼트와 홈 피트니스 분야 합작법인 '피트니스캔디'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는 그간 성능 중심의 가전제품 제조업에서 벗어나 스마트 가전 패러다임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다.
삼성전자 역시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QD(퀀텀닷)-OLED를 적용한 첫 TV를 북미·유럽 시장에 출시하고 무풍에어컨 등 프리미엄 제품의 비중을 확대해 나가는 동시에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형 비즈니스 TV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소비자용 TV 수요가 한풀 꺾인 반면, 대형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기업·소상공인 중심 수요는 증가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럭셔리 빌트인 가전 '데이코'를 통해서 B2B 사업 확대도 노리고 있다. 데이코는 지난 1948년 미국에서 출발한 가전 브랜드로 삼성전자가 2016년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데이코를 통해 고급 주상복합 등에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은 대기업 외에 중견·중소 업체들도 고수하는 마케팅 비법이다. SK매직은 친환경 가전시장 선점을 위해 '그린 컬렉션'을 만들었다. 위닉스의 경우 건조기·제습기 등의 주요 상품군에서 대기업 제품보다는 낮지만 기존 제품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인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선풍기로 유명한 신일전자 역시 트렌디한 디자인을 적용해 젊은층을 겨냥한 고급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가전업계가 이처럼 프리미엄 전략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수요나 최신 트렌드에 따라 단종됐던 소형 가전을 다시 내놓는 등 '가격대는 낮으면서 기능은 합리적인' 가성비 제품도 선보이며 프리미엄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17년 단종시킨 '인버터 제습기'를 올해 5월 재출시했다. 제습 성능은 높이고 에너지 소비효율은 1등급으로 맞춰 전기료 부담을 낮추도록 했다. 최근 이상 기후 여파로 인해 '습도'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에어컨에 딸린 기본 제습 기능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최근 '방방냉방' 트렌드에 맞춰 2012년 판매를 중단했던 창문형 에어컨을 다시 재소환했다. 'LG 휘센 오브제 컬렉션 엣지'는 공기 흡입구를 전면에 배치해 돌출을 최소화 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창문형 에어컨의 '앞툭튀'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없애고 좁은 공간에서도 활용가능한 점에 착안한 디자인이다.
또한 가전업계는 이같은 '가성비' 제품 외에도 '가심비'로 불릴만한 틈새시장을 겨냥한 새 가전제품들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국내 가전 매출에서 점차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다. LG전자의 식물생활가전 'LG 틔운 미니'가 가장 대표적이다. 149만원짜리 'LG 틔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19만원대)에 물과 영양제만 있으면 쉽게 반려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처럼 단순히 저렴한 초저가나 초가성비 가전제품은 MZ 트렌드에는 완전히 부합하진 않는다"며 "그 대신 공간을 덜 차지하는 초미니 제품, 가격이 초저가는 아니지만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가심비 제품 등이 훨씬 더 각광받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