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그룹 상반기만 2조 적립
코로나 금융지원 종료에 '초긴장'
국내 4대 금융그룹이 올해 들어 대출 부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이 1년 전보다 1조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2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초기의 대규모 적립 덕에 지난해 들어서는 다소 긴장이 풀린 모습이었지만, 시장 불안이 장기화하고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충당금 공포가 다시 엄습하는 분위기다.
금융권에서는 한 달여 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실시돼 온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대출 리스크를 둘러싼 진짜 위기가 고개를 내밀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개 금융그룹의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은 총 1조9841억원으로 전년 대비 동기 70.2% 늘었다. 액수로 따지면 8181억원에 달하는 증가폭이다.
신용손실충당금은 금융사가 고객들에게 빌려준 돈의 일부가 회수되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수익의 일부를 충당해 둔 것이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우선 신한은행이 쌓은 신용손실충당금이 601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67.6% 늘며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금융 역시 4969억원으로, KB금융은 4632억원으로 각각 142.9%와 16.6%씩 신용손실충당금이 증가했다. 하나금융이 적립한 신용손실충당금도 4222억원으로 105.7% 늘었다.
금융그룹들의 신용손실충당금 규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널뛰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2019년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의 연간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은 2조7511억원 수준이었는데, 이듬해인 2020년에는 4조1070억원으로 1년 새 49.3%(1조3559억원) 급증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이 3조2509억원으로 다시 전년 대비 20.8%(8560억원) 줄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그룹들은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해둔 만큼, 어느 정도 속도조절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또 코로나19 직후 충당금을 워낙 많이 쌓아둔 탓에 지난해는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아 보일 뿐 결코 부족한 양이 아니란 입장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금융그룹들은 저마다 충당금 확대에 다시 사활을 거는 모습으로 태도를 뒤바꿨다. 배경에는 확산하고 있는 금융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으로 환율과 금리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대출 리스크에 대한 대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금융당국의 압박도 한 몫을 했다. 지난 달 12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 후 첫 업계 간담회로 금융그룹 회장단과 만나 "금융지주가 스스로 시장의 1차 방어선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예상 손실 확대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충당금 적립과 자본 확충 등을 준비해 달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추가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상대로 시행돼 온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다음 달 말 종료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면 아래로 억눌려 온 부실 대출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에 따르면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의 적용을 받고 있는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33조7000억원에 이른다. 업권별로 보면 은행이 90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정책금융기관 40조원, 제2금융권 3조6000억원 등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금융지원으로 억제돼 온 대출 리스크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해당 정책 종료 후 부실이 생각보다 큰 것으로 확인될 경우 금융권은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역대급 충당금 적립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