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할증료 소폭 내렸지만 부담 여전
미주·유럽 경우 예상 대비 수요 적어
여객 맞으랴 이익률 방어하랴… 난감한 항공업계
"주말 제주도 비행기 가격이 4인 가족 기준 100만원 정도 되더라고요. 4년 전 다녀왔을 때만 하더라도 1인당 10만원 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가격이면 해외가 낫겠다 싶어 가까운 해외 가격도 알아봤지만 마찬가지더라고요."
#. 직장인 김선아(35·가명)씨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제주도로 가는 주말 항공권을 예약하려다 결국 강원도로 행선지를 바꿨다. 제주 여행을 다녀오는 동료 직원이 늘어 부푼 마음으로 예약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4년 전과 비교해 값이 크게 뛰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 미국에 거주하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 참석을 앞둔 이주영(29·가명)씨는 라스베가스행 항공권을 찾아보고 고민에 빠졌다. 10년 전부터 일년에 2-3번은 꾸준히 오고갔던 곳이지만, 왕복 항공권 가격이 300만원을 넘어섰던 적은 없어서다. 최근 미국 물가가 크게 올라 항공권 이외에 써야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재개로 국제선, 국내선 노선이 대폭 확대되고 있지만 항공권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유가와 환율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최소한의 이익률 방어가 불가피한 만큼 당분간 항공권 가격대가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9일 기준 대한항공 예약 홈페이지를 보면, 이번주(9~13일) 출발하는 라스베가스행 항공권 가격은 195~300만원 선을 보이고 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으로 출발하는 항공권은 160~390만원에 이른다.
아시아나 항공 역시 같은 기간 라스베가스로 출발하는 왕복 항공권은 180~300만원 선, 파리로 가는 왕복 항공권은 150~250만원 대다. 두 항공사 모두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100~150만원 이상 뛴 가격이다.
국내선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시아나항공 예약 페이지를 보면, 이번주 평일 편도 기준 이코노미석 정상운임 가격은 10만8000원, 금~토 정상운임은 13만9000원이다. 왕복항공권 가격이 1인당 평균 20만원을 훌쩍 넘기는 셈이다. LCC(저가 항공사) 역시 유류할증료를 포함한 1인 평균 가격이 20만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권 가격이 높게 형성된 것은 고유가에 따른 유류할증료의 상승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소비자가 체감하기에 미주·유럽 기준 100만원, 일본 기준 10만원, 국내선 기준 3만원 이상 비싸졌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대한항공이 공지한 유류할증료 추이를 보면, 한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편도 유류할증료는 미국 기준(최장거리) 올해 1월 7만9200원에서 3월 13만8000원으로, 7월에는 32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9월을 기점으로 소폭 하락하면서 11월 기준 24만3000원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올해 1월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다. 국내선 유류할증료 역시 편도 기준 올 1월 5500원에서 8월엔 2만2000원까지 높아졌다가 지난달엔 15400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항공업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 러시아 핵 위협 등 다양한 변수가 산재한 상황에서 유가가 언제 상승할 지 몰라 노심초사 하고 있다. 어렵게 되살아난 여행심리가 꺾일까하는 우려에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2017~2018년만 하더라도 일본 기준 유류할증료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운임이 20이라 하더라도 세금이 10만원 붙는 상황"이라며 "불안정한 국제정세로 최근 내림세로 돌아선 유가가 언제 다시 증가할 지 알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가 증가하면 운용비는 오르고, 이익률을 방어해야하니 무작정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며 "가격 상승도 걱정이지만, 이제 다시 되살아난 여행심리가 꺾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미주와 유럽 노선의 경우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요가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정보 포탈에 따르면 국제선 정상화 전인 지난 3월 미주 지역을 운항한 항공편은 총 3869편이었지만, 지난 9월 미주 운항편은 이보다 3637편으로 오히려 줄었다. 유럽 운항편수 역시 지난 3월 1153편에서 9월 1822편으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본, 동남아 등의 수요는 대폭 확대된 반면 미주와 유럽 수요는 상대적으로 더디다"며 "공급 대비 수요 기준으로 항공권 가격이 책정되는 만큼 유류할증료를 제외하더라도 유럽, 미주의 경우 항공권 가격이 다소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