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만에 매수세…12월 1조 넘게 사들여
퇴직연금 차입규제 완화·RP매도 허용 덕
유동성 확보에 급급했던 보험사들이 채권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자금 흐름이 안정화된 덕분이다.
다만 올해 도입된 새 회계기준(IFRS17)과 새 지급여력제도(K-ICS)로 인한 불확실성은 이 같은 행보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달 보험사는 1조2363억원 어치의 채권을 순매수했다. 보험업계의 채권 투자가 순매수로 돌아선 건 넉 달 만이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각각 6317억원과 2조2319억원, 3조5534억원의 채권을 매도했다. 이 기간 시장에 던진 채권 물량만 6조2274억원에 이른다.
이는 보험업계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자 채권을 매각하며 숨통을 트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레고랜드와 콜옵션 연기 사태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IFRS17를 대비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본 확충도 필요했다.
그러나 단시간에 채권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시장 불안이 가속화될 수 있다. 채권 매각이 헐값으로 떨어지거나 매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채권 매각 외 방법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빗장을 풀어줬다. 먼저 올해 3월 말까지 퇴직연금 차입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냈다. 기존 10%로 제한된 퇴직연금 차입한도가 풀리면 별도 계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일반계정으로 가져올 수 있는 등 현금 확보에 유리하다.
또 환매조건부채권(RP)매도를 허용했다. RP는 금융기관이 판매하는 RP는 짧은 기간 안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특별계정을 통한 RP매매는 보험업규정에는 명시돼 있지 않았으며 이를 묵시적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RP매도 허용을 명확히 하며 단기 자금 마련이 용이해졌다.
더불어 유동성 자산 인정범위를 확대했다. 만기 3개월 이상의 채권도 현금화 자산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덕분에 한 숨 놓인 보험사들은 채권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 시기에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매도하기에도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보험사들의 재정 안정화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새로 도입된 IFRS17과 K-ICS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정해진 기간까지 규제 완화책을 유지하며 모니터링을 진행한 뒤 대처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국의 규제 완화와 더불어 시장 자체가 안정화되는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며 보험사가 채권 순매수세로 갈아탄 것"이라며 "규제 완화 기한까지 시장을 지켜보고 그에 맞춰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