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키운 '이자 장사' 논란
강제 시장 재편 의제로 확대
'선택과 집중' 특수銀 현실적
'현실적 장벽 한계' 회의론도
정부가 대형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한 과점 구조에 대수술을 예고하고 나서면서 금융권이 출렁이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으로부터 본격화된 이자 장사 논란이 결국 단순한 폭리 여부를 넘어, 강제 시장 재편이라는 대형 의제로 전환되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장 기존 시중은행과 동등하게 경쟁할 메가뱅크를 만들어 내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우선은 소형 특수 은행을 통해 소비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청사진이 그려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메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며 "실질적인 경쟁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또 윤 대통령은 "금융과 통신은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관련 대책을 주문했다.
이에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임원들에게 지시했다. 이 원장은 전날 열린 금감원 임원 회의에서 은행 업무의 시장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효율적인 가격으로 서비스가 금융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은행권의 이자 장사 지적에 대한 대안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예금·대출 쏠림 60~70%
우리나라 은행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국내 예금과 대출 시장에서 일부 대형 은행들의 점유율이 절반을 훌쩍 넘는 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 은행권의 원화 대출 총액에서 5대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65.7%에 이른다. 같은 시점 원화 예수금 중 해당 은행들의 점유율은 72.8%로 더 높다.
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대형 은행들을 키워야 한다는 이른바 메가뱅크 육성론이 힘을 얻던 때도 있었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금융위기 이후 우리 은행권도 글로벌 진출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시중은행들의 덩치 키우기가 본격화했다.
메가뱅크론에 이어 한 때는 투자은행(IB) 육성이 어젠다로 떠오르기도 했다. 단순히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를 통한 예대마진에만 집중하는 전당포식 영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대형 은행들은 기업금융과 투자 부문을 보다 확대하는 IB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추세였다.
그러다 이번에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과점 구조를 다시 꼬집으면서 은행권의 구조 개편 논의에는 다시 불이 지펴질 전망이다. 대통령이 나서 직접 문제 해결을 지시한 만큼, 금융당국 주도의 시장 손질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 편익 '핵심 화두'
금감원은 국민의 편익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가능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와중 은행권만 고금리로 이득을 보고 있다는 비판이 이번 논의의 촉매제가 된 만큼, 소비자 이익 증진이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지금처럼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과 다른 소형 전문은행이 거론된다. 신규 사업자가 곧바로 메가뱅크들과 완전 경쟁에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은행의 인가를 세분화해 특화 대출 상품 등을 취급하는 핀셋 전략이 유효할 것이란 판단이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 전문은행이나 도소매 전문은행, 중소기업 전문은행 등이 나올 수 있다.
금융당국이 장기간 추진해 온 혁신금융 정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동안 육성해 온 핀테크업체 풀을 활용해 기성 금융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금감원 역시 비슷한 시도에 나섰던 영국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를 계기로 산업간 경쟁 촉진을 위한 은행 신설을 유도했고, 이를 통해 핀테크와 접목한 형태의 일명 챌린저 은행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 도전 난항 불가피
다만 당장 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엔 제한이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분야보다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금융권 중에서도,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은행권의 특성 상 인위적인 판도 흔들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카카오뱅크가 2015년 처음 영업을 개시한 이후 케이뱅크와 토스뱅크도 추가 인가를 받으면서 은행권의 변화 여부에 시선이 쏠렸다.
실제로 카카오뱅크는 출범 초창기에 기존 은행권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고객 편의적인 서비스를 내놓으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5대 은행은 이를 재빨리 흡수했고, 시간이 갈수록 차별성은 점점 옅어져 왔다. 결과적으로 현재 인터넷은행이 5대 은행 과점의 시장 판도를 바꿨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실정이다.
시장에서는 확실한 플랜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 또 다시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공산이 크다는 예측이 우세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은 원가가 공개된 산업"이라며 "소액 특화 관점에서 접근한다 하더라도, 결국 예금과 대출이란 대전제 안에서라면 기존 시중은행들이 최종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은행권의 반발도 변수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정부의 금융지원 요구에 줄곧 발맞춰 왔음에도, 과점 체제를 깨라는 압박으로까지 이어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취약 차주 지원 등 금융당국의 사회적 역할 요구에 매번 적극 협조해 왔는데, 끝내 시장 구조에까지 메스를 대겠다는 강경 대응에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