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예상 밖의 수익을 정부에 공유하기로 약속하는 등 엄격한 요구 사항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28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보조금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 정부는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모두 390억달러(약 50조원)의 지원금을 책정했다. 보조금 지급조건은 ▲ 사내 보육시설 건립 ▲ 초과이익 환수 ▲ 근로자 교육 등이 주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부는 우선 1억 500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보육지원 계획을 제출하도록 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 인근에 사내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지역에 있는 보육사업자에게 더 많은 어린이를 수용하도록 돈을 내거나, 직원에게 직접 보조금을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가 보육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등 미국 제조업을 다시 육성하는 데 아이 돌봄 비용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장을 돌릴 노동자 확보가 관건이지만 많은 미국인이 보육비용 부담 때문에 일터로 나서는 대신 집에 남아 자녀를 직접 돌본다는 것이다.
상무부는 또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이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린 경우 수익 일부를 연방정부에 공유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자사의 재정계획을 제출하면서 연간 실적 전망치도 산출해 정부에 공개해야 한다.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수익은 미 정부가 공유받을 수 있다. 상무부는 기업들이 보다 투명한 실적을 공개하고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자사 성과를 과장하거나 손실을 감추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 같은 규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자사주 매입도 제한될 전망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이 같은 금융정책 도입으로 기업들은 정말 필요한 기금만 신청하게 될 것"이라며 "피 같은 세금이 주주들 주머니를 채우는 데 악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NYT에 전했다.
대학과 연계해 근로자들에게 첨단기술 교육 등 재개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는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 근로자 수만 명에게 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미 정부는 28일부터 보조금 신청 접수를 받는데, 3월에 추가 규제가 예고돼 있다. 중국 투자금지 조항 관련 세부 지침이 나오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관련 핵심 광물·배터리 부품 규정 시행안도 발표된다.
때문에 지원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게 표면적 이유이지만, 복잡한 사전 조건을 달아 미 기업에 보조금을 몰아주려는 게 속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조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반도체 첨단시설 투자가 금지된 데 이어 까다로운 조건들이 줄줄이 추가되면서 삼성과 SK 등 한국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