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능·무력화에 올인했던 야당
정치 리더 자질 제대로 갖춘 한 대행
민주가 국힘 재집권 돕기에 안간힘
짐작건대 더불어민주당은 차기대선 승리를 위해, 그간 집착했던 이재명 카드를 포기한 모양이다. 대신 집어 든 것이 한덕수 카드인 것 같다. 그럴싸한 추측 아닌가? 이 대표는 도덕적 법적 하자를 너무 크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원톱이지만 그게 별로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난번 대선 때도 그는 대통령 당선이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여겨질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당시는 문재인 좌파정권의 집권기였다. 제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확보한 압도적 국회 의석수는 대선에서 대단한 득표력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높여줬다. 당시 민주당 이 후보에게는 운(運)까지 극적으로 거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강력한 당내 경쟁자들이 자기 과실로 줄줄이 주저앉아 버렸다.
정부 무능·무력화에 올인했던 야당
이에 비해 국민의힘은 여전히 패배 의식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감 빈곤까지 겪고 있었다. 민주당 이 후보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선물처럼 등장한 인물이 윤 대통령이었다. 그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 및 그 측근들과의 갈등 속에서 검찰총장직을 사퇴(2021년 3월 4일)했었다. 그 5개월쯤 후(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당의 모든 사람이 환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빈집에 소 들어온 격’이었다.
선거 결과는 정치 경험이 거의 없었던 윤 후보의 0.73%포인트 신승이었다. 이게 억울했던 듯 민주당과 이 후보 측은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를 보이는 대신에 대선 직후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22대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두자 민주당은 여당을 의정(議政)에서 배제하다시피 하며 온갖 꾀와 수단을 동원해 정부 무력화·무능화를 시도했다.
민주당은 정치보복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건 대선 패배에 대한 분풀이에 훨씬 가까웠다. 더욱이 숱한 범죄 혐의의 수렁에서 벗어나 차기 대선에 승리 주자로 나서야 한다는 강박감이 당사자인 이 대표와 민주당을 휘감았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충성스러운 측근들 주도로 고위공직자 탄핵소추와 특검 수사를 남발했다. 정부와 감사원 등 주요 기관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기로 작정한 듯한 행태였다.
그 분위기에 윤 대통령이 말려들어 최후적 대응 수단으로 비상계엄령을 택했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정을 운영할 길이 막히자 헌법이 마련해둔 비상구를 열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선포로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민심의 저항을 초래, 험악한 되치기를 당하는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까지 기회가 빨리 올 것으로 기대를 못 했을 민주당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여겨 ‘정부·여당 끝장내기’를 서둘렀다. ‘(사실상의)이재명 통치시대’를 곧바로 구현하려는 욕구를 그대로 드러냈다. 무리하면 동티가 나는 법이다. 그 이치를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 성급한 욕심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그 과도한 욕심의 한 단면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다. 민주당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던 26일까지도 한 대행이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자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27일, 그러니까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문제는 의결정족수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야당은 재적의원 과반(151명)의 찬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 리더 자질 제대로 갖춘 한 대행
우원식 국회의장이 결정을 내리게 되겠지만 바로 ‘과반수’를 적용해 통과를 돕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심사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표결 시점을 늦출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여당의 주장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그게 민주당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되면 국제사회의 우리에 대한 인식은 극도로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혼란을 스스로 극복할 역량이 없다고 판단되는데 두고 보기만 하겠는가. 달러를 빼가고, 거래를 끊고 하는 사태가 생기면 우리 경제는 위기에 빠지고 제2의 외환위기는 턱밑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 국민 불안까지 겹쳐 사회‧경제적 혼란이 커지면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정치·경제·외교의 파국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도 민주당이 한 대행을 탄핵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국민의힘으로서는 오히려 호재가 된다. 지금 국민의힘은 지리멸렬이다. 차기 주자도 마땅찮다. 혹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당내에서 “나요, 나요” 하며 손 치켜들고 나설 사람들이 있긴 하겠지만 이 시점에 특별히 국민의 주목을 받을 사람은 없다. 개개인은 유능하다고 해도 단시간에 대중적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반전의 드라마를 엮어낼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바로 한 대행이다. 그가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는 대행직을 맡은 요 며칠 사이에 소신과 강단있는 배포를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 탄핵소추까지 당하면 그의 역량과 이미지가 더 뚜렷이 부각되겠지만 이 시점만으로도 부족하지는 않다.
게다가 그는 탁월한 경제학자 겸 전문가다. 국무총리를 두 번(한 번은 노무현 정부 때) 역임하는 등 경력이 화려하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흔들리는 한국 경제를 신속히 안정시키고 국제신인도를 회복시킬 적임자라 할 수 있다.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국제 교류·협력의 경험과 실력을 갖췄다. 이념 편향성이 없는 데다 호남 출신이다. 좌우 및 동서의 화합을 이뤄내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사람들이 ‘당의 아버지’ ‘신의 사제’라며 추앙해 마지않는 이 대표가 한 대행과 비견될 수 있는지는 국민 각자의 판단 몫이다.
민주가 국힘 재집권 돕기에 안간힘
민주당 사람들도 내심으로는 이 대표의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여길 것이다. 그 대안으로서 지역적 연고를 가진 한 대행을 염두에 두고 탄핵소추 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카드를 바꿀 생각이 아니라면 덕장(德將)에다 용장(勇將)의 칭호까지 바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의힘에 말하려고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리더십 부재의 상태다. 이점 솔직히 인정하시라. 당내에서 지도자감을 구해 차기 대선에 내세우기는 시간상으로 너무 촉박하다. 한 대행 말고는 확실한 대안이 없다. 관료적 마인드와 행동양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이번 민주당의 탄핵 협박 과정에서 한 대행이 보여준 소신 강단 배포를 보면 정치리더로서의 자질도 충분하다.
지난번 대선 때처럼 국민의힘은 패망의 골짜기에서 극적인 재기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 그 도움이 민주당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도 그때와 흡사하다. 민주당 이 대표는 지난 대선의 패인이 후보의 자질 부족 때문이었음을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자신으로 인하여 그 좋은 선거판을 망쳤으면 반성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텐데 당선자 끌어내리기에만 전 당력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사람이 바로 이 대표다.
혜안은 없지만, 상식의 눈으로 전망하건대 차기 대선에서도 이 대표는 승리하지 못한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제동력이 작동한다면 지금이라도 멈추는 게 자신을 살리는 길이다. 아무리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이라도 국가 위기를 초래한 과오까지 용서하지는 않는다. 대안이 생기면 민심은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한 대행을 탄압해 보시라. 그건 그를 키워주는 일일 뿐이다.
‘이솝우화’ 한 편을 읽고 끝내자.
헤라클레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힘이 센 영웅)가 좁은 길을 가고 있는데 길 위에 사과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그걸 걷어찼더니 되레 두 배로 커졌다. 그래서 더 세게 짓밟고 몽둥이로 쳤다. 사과는 집채만 하게 부풀어 아예 길을 막아버렸다. 헤라클레스가 망연자실해 있는데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그만 하세요. 그것은 경쟁과 분쟁이라는 자인데 건드리지 않으면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싸움을 걸면 이렇게 부풀어 오른답니다.”
싸움꾼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