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잔디 때문에 연일 굴욕을 뒤집어쓰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타 출신의 제시 린가드(33·FC서울)는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사진 한 장을 올리면서 ‘분노’와 ‘골프’ 이모티콘을 달았다. 축구장 상태가 마치 라운딩을 심하게 한 골프장 잔디처럼 패여서 화가 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린가드 소속팀 서울은 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하나은행 K리그1 2025’ 3라운드 김천상무전에서 0-0 무승부에 그쳤다.
4만여 관중이 찾았던 직전 홈경기에서 안양FC를 꺾은 서울은 홈에서 연승을 노렸지만, 1골도 넣지 못하고 비겼다. 쌀쌀한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아 뜨거운 응원을 펼쳤던 2만5000여 관중들은 아쉬움을 삼켰다. 경기 후 팬들은 “상태 안 좋은 잔디가 경기를 지배했다”며 혀를 찼다.
아쉬운 결과를 받아든 서울 선수들도 그라운드의 잔디를 발로 밟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영하의 체감 온도 속에 그라운드 잔디는 푹푹 파일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여러 선수들이 잔디로 인해 넘어졌고, 좋은 기회를 어이없게 날리기도 했다. 우려대로 선수들은 부상 위험에 노출됐고, 기량과 투지에 비해 경기력은 저조했다.
린가드 역시 마찬가지. 전반 25분 중원에서 김천 진영으로 돌파하던 린가드는 뜬 잔디에 걸려 넘어졌다. 발목 통증을 호소하는 린가드를 지켜보는 김기동 감독이나 선수들, 팬들 모두 걱정이 컸다. 다행히 린가드는 일어났지만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린가드는 한 차례 더 잔디로 인해 넘어져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1000만에 가까운 팔로워를 보유한 린가드의 SNS 게시물과 함께 서울월드컵경기장 관리 주체인 서울시설공단의 시민의 소리 게시판에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엔 폭염과 폭우로 잔디가 과도하게 손상됐다. 때문에 축구대표팀은 안방에서 잔디 탓에 고전하다가도 원정에 가면 살아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3월 치르는 두 차례 ‘2026 FIFA 북중미월드컵’ 최종예선을 서울이 아닌 고양종합운동장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개최 장소로 결정한 이유다.
서울 미드필더 기성용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공연장 대여 등으로) 80억 원을 벌었는데 (잔디 관리에) 2억 원만 썼다고 들었다. 해외에도 중계가 되는데 어떻게 대표팀 경기를 그런 잔디에서 할 수 있나”라고 질타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만 문제가 아니다. 전북 현대는 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홈 전주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치른다. 잔디 상태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기장 소유주인 지방자치단체와 시설관리공단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돈과 의지다. 지자체와 정부, 그리고 구단이 한데 모여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축구장 잔디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면,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부상 위험에 노출되고, 경기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은 축구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