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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휴강 시네마, 작지만 깊게…독립 상영 공간이 바꾸는 관람의 미래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5.04.04 14:45 수정 2025.04.04 14:51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작은영화관 탐방기⑳] 자체휴강 시네마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단편 영화 틀어주는 곳 없어 직접 만든 공간"


자체휴강시네마는 거대한 상업영화관의 틈에서, 짧고 굵은 단편과 독립영화 위주의 이야기를 틀고 있다. 이 공간은, 누군가에겐 스크린 너머 세계를 새로 만나는 첫 경험이 되고, 누군가에겐 오래된 영화 사랑을 다시 깨우는 계기가 된다. 박래경 대표는 그 모든 감정이 스며드는 상영 공간을 직접 만들었다. 2017년 문을 연 자체휴강시네마는 단편 영화 위주의 상영을 하다 현재는 예약제로 단편과 독립예술영화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제가 문예창작과 출신입니다. 소설을 전공하다 어느 순간 희곡을 접하게 됐어요. 희곡을 공부하면서 제가 책보다 영화를 많이 본다는 걸 문득 깨달았죠. 그래서 영화 관련한 시나리오를 작업하게 됐습니다. 쓰다보니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처음부터 장편을 만들 수 없으니 단편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영화를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단편 영화는 접한 적이 없더라고요. 단편을 찾아보면서 왜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내가 몰랐었나보니 이 영화들을 틀어주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때 ‘이걸 전문적으로 상영해주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저한테도 좋겠지만, 관객들에게도요. 당시 제가 겁이 없어서 정신 차리고 보니 집 보증금을 빼고 자체휴강시네마를 만들었더라고요."


박 대표는 단편영화 ‘언박싱’ ‘오늘의 별점’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현재 영화 작업 관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자체휴강시네마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제가 이번에는 감독 커리어로서 중요한 작품을 작업하고 있어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약제로 전환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저희 공간이 솔직히 접근성이 좋은 편도 아니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도 아니에요. 단편영화 상영관이라는 것도 낯설다 보니,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들어오시는 분들도 거의 없고요. 그래서 아예 프라이빗하게 예약제로 운영하니 오히려 만족도가 높아요. 세 명이든 다섯 명이든, 다른 팀과 섞이지 않고 본인들만 온전히 공간을 쓸 수 있거든요.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아르바이트생을 두거나, 상권이 더 활발한 지역으로 공간을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일반 극장처럼 '이 시간에 이 영화를 튼다'는 식으로 정해놓고 상시 운영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겠죠. 아직은 쉽지 않지만, 먼 미래엔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라면, 그 공간만의 선별 기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박 대표는 상영자의 시선과 관객의 눈높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단편영화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단편은 어렵다'고 느끼지 않게 하려면, 무조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만 고집할 순 없어요. 자기 세계가 뚜렷한 작품도 당연히 상영하지만, 너무 '허들이 높은' 영화들만 있으면 관객이 단편에 대한 오해를 가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범용성이나 대중성을 갖춘 작품을 한두 편 이상은 꼭 섞으려 해요. 그리고 처음의 의도를 끝까지 끌고 가서, 짧지만 임팩트 있게 완결 짓는 영화들을 선호하죠. 또 단편은 무엇보다 연기가 굉장히 중요해요. 장편은 보조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지만, 단편은 대부분 한 인물이나 하나의 집단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거든요. 그렇다 보니 연기와 연출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 그리고 그 배우가 관객을 얼마나 설득하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 요소들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라면 이후에 영화제 수상 여부도 참고는 해요. 다만 수상 실적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에요. 수상작은 '여러 사람의 눈을 거쳤다'는 객관적 근거가 되기 때문에 참고 자료로 삼는다는 거지, 상영 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은 아닙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영화관이 주는 경험의 힘 믿어"


박 대표는 지금의 극장 산업이 위기라는 인식 속에서도, 오히려 ‘작은 극장’이 새로운 생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관객 감소로 줄줄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전국 곳곳에서 마이크로 시네마라 불리는 소규모 상영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현상은 그런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가 조금 시대를 앞서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명, 300명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한 영화에 1000만 명이 몰리는 시스템이 애초에 정상적이었나 싶기도 하고요. 오히려 지금처럼 덩치가 줄어들고, 관람 방식이 분화되는 흐름이 원래의 모습에 가까운 건지도 모르죠."


박 대표는 앞으로의 영화 관람 방식이 점점 더 ‘소수의 밀도 있는 경험’으로 옮겨갈 것이라 내다본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관람하는 기존 모델과 달리, 취향과 목적을 공유하는 소규모 관객이 함께 모이는 방식, 즉 '관람 공동체' 중심의 구조가 점차 자연스러워질 거라는 전망이다. 그는 이러한 관람 형태가 마이크로 시네마의 존재 이유이자, 미래의 방향성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 쉬운 점은 문제는 제도적 정의의 부재다.


"지금 같은 공간은 영화관법상 영화관으로 분류되지 않아요. 요건을 충족하려면 시설 기준이 까다롭고, 현실적으로 독립 상영관에게는 문턱이 높습니다. 업계 안에서는 이 같은 공간들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인정하자는 논의도 조금씩 시작되고 있어요."


기술적 진입장벽은 오히려 낮아졌다. 과거에는 영사기가 있어야 상영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간단한 장비와 프로젝터만으로도 충분한 상영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작은영화관이 장점이 됐다.


"예전 같으면 두세 명이 붙어서 기계를 조작해야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심지어 무인 시스템으로도 운영이 가능할 정도예요. 기술 발전은 이런 공간들이 더 많이 생겨나는 데 분명히 도움을 주고 있죠."


박 대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경험 자체가 가진 고유한 힘을 누구보다 믿는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스크린 앞에 앉는 행위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감각의 전환이라 말한다.


“저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고유한 경험의 힘을 믿어요. 요즘 다들 집에서 보거나 핸드폰으로 보잖아요. 저도 '비디오 키즈'였기 때문에 그런 시청 방식이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거 잘 알아요. 그런데 집에서 볼 땐 내가 영화를 조작하게 되잖아요. 배속도 하고, 스킵도 하고, 잠깐 멈췄다가 딴 일 했다가 다시 보기도 하고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상태에서 과연 '영화를 온전히 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반면에 영화관은 사람이 스스로를 잠깐 가두는 곳이에요. 다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공간이죠. 단편이면 30분, 장편이면 2시간 정도 그 시간 동안 외부와 단절돼서 스크린 안에 잠기는 감각, 그건 아직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경험이에요. 저는 그걸 좋아하는 분들이 결국 영화관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비합리적인 소비'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영화관은 하나둘씩 사라지겠죠. 하지만 저는 그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관은 없어질 수 없는 공간이에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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