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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국내 1호 영구임대 '번동3단지'…"재건축 하면 어디 갈곳 있나"


입력 2018.06.01 06:00 수정 2018.06.01 06:01        이정윤 기자

총 4181가구 저소득 고령자‧장애인 등 거주민 대부분

재건축으로 이주할 경우 인근지역 비슷한 수준 임대료 맞추기 어려워

우리나라 1호 영구임대주택인 '번동3단지' 아파트 복도 전경. ⓒ이정윤 기자

“우리가 어떻게 이사를 가요, 옮겨줘야 가든 말든 하지. 평생을 여기서 살았는데 이제 다 늙어서 갑자기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건 엄두도 안 나, 몸도 아프고.”(28년째 번동3단지에 거주 중인 70대 중반 김모씨)

과거 노태우 정부는 영구임대주택 25만가구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 시내에 있는 영구임대단지는 약 2만3628만 가구.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공급된 번동3단지는 우리나라 최초 영구임대아파트다.

모두 5개 단지로 조성된 번동주공아파트의 2‧3‧5단지는 영구임대아파트, 1‧4단지 일반아파트다. 영구임대의 경우 준공 순으로는 3단지(1990년, 1292가구), 2단지(1991년, 1766가구), 5단지(1991년, 1123가구)가 오는 2020년부터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줄줄이 앞두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노후 영구임대단지를 재건축하는 계획을 밝혔다. 만약 정부가 노후 영구임대 재건축을 추진한다면 재건축 연한이 먼저 도래하는 3단지부터 시작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번동 영구임대 단지 인근에는 4181가구를 흡수할만한 다른 임대주택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옮긴다 하더라도 영구임대보다 비싼 임대료를 해결할 자금 문제 또한 넘어야할 산이다. 임대료 인상분을 정부에서 모두 지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부분이다.

지난 30일 직접 찾아간 번동3단지는 다른 아파트들과는 달리 단지를 오가는 복지시설 차량이 눈에 띄게 많았다. 현재 번동3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급자와 장애인으로 이뤄져있다. 그래서인지 단지 내에서 보이는 주민들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이거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만약 재건축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한 거주민은 “녹물이 나와도 고쳐서 쓰면 또 괜찮고, 집이 지금 당장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난 여길 나가야 한다면 죽어서나 나가고 싶다”면서 “지금 월세에 관리비까지 내고 나면 돈도 없다”라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임대료가 불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다.

번동3단지 임대료는 전용면적뿐만 아니라 층별로도 임대료가 다르게 책정돼 있다. 전용 26‧31‧36‧37‧40㎡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균적으로 보증금은 200만원 중반~300만원 후반 대에 월세는 5만~7만원 후반 사이로 책정됐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올해 1월 새롭게 책정된 임대료지만 월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전용 26㎡형 3층에 살고 있는 수급자의 경우 보증금 256만4000원에 월세 5만1050원, 관리비 7만2320원을 낸다. 평균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만원 대로 형성돼 있는 서울시내 공공임대료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흔히 알려진 임대아파트 기피현상도 예전보다 덜하다. 국토부는 임대단지에 대한 소외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소셜믹스’, ‘창의적인 외관’, ‘새로운 임대주택 이름’ 등을 준비 중이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대기수요가 줄을 잇고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영구임대는 임대료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기피는커녕 들어오려는 수요가 줄을 잇는다”면서 “예비입주자 모집만 하더라도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한다”며 영구임대 아파트의 인기를 설명했다.

현재 번동3단지 예비입주자 수는 55가구, 번동2단지는 99가구, 번동5단지는 27가구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있는 예비입주자 모집 경쟁률은 수십대 1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 같은 입주 대기상황은 번동영구임대 외에 다른 영구임대단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기수요를 해소하는 일 또한 영구임대 재건축 시 고려해야할 문제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영구임대 재건축의 거주자 이전 문제는 엄청 복잡하기 때문에 학계에서 큰 이슈다”라며 “적절한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OECD 기준으로 8~10% 사이로 현재 우리나라는 6% 대이기 때문에 공급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임대주택 사업이란 것 자체가 수익성보다는 예산투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책과 방안이 마련된 상태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1호 영구임대주택인 '번동3단지' 전경. ⓒ이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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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기자 (think_un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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