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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없는 사람들 집까지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골목길 효자' 마을버스 6월부터 멈추나


입력 2021.05.17 05:00 수정 2021.05.16 20:08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이한나 기자, 최다은 기자

코로나 직격탄 맞아 지난해 승객수·운송 수입금 약 27% 감소

준공영제 아닌 민영제…14년째 어린이·청소년 요금 동결, 6년째 일반 요금 동결

서울마을버스조합 "시내버스나 지하철은 적자 보전해주는데 마을버스만 안 해줘" 불만 토로

전문가 "시장 논리에 따라 교통 사각지대의 교통약자들만 피해 볼 것…재정적자 보전 절실"

13일 금천구청 앞 버스정류장에 정차한 '금천 04번' 버스에 '마을버스 운행 중단' 현수막이 걸려있다.ⓒ데일리안

낮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은 지난 14일 오후 12시30분 은평구 산새마을 한 버스정류장 앞. 주민 이모(84)씨는 '은평 10번' 버스를 18분가량 기다렸다. 가장 가까운 병원도 이 버스를 타고 높은 언덕길을 지나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평 10번' 버스는 이 마을의 유일한 마을버스다. 이 씨는 "이 버스가 없으면 나는 골다공증이 있어 오도가도 못 한다"며 "마을버스 운영이 다음 달부터 멈춘다는 예기를 들었는데 병원도 가지 말라는 소리"라고 분노했다.


서울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 곳곳을 누비는 '시민의 발' 마을버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6월 1일부터 멈춰 설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서울의 마을버스 노선 249개 중 70%가량인 175개가 평균 17%, 최대 30%까지 운행 횟수를 줄였다. 당장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노인·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들은 일제히 마을버스 운행 중단을 반대했다. 이날 '금천 01번' 마을버스를 탑승한 지체장애 5급 장모(84)씨는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있어 5분 이상 걷기 힘들어 평소에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마을버스 운행이 중단된다니 사회적 약자들에겐 너무 가혹하다"며 "돈이 있는 사람들은 택시나 자가용을 타면 그만이지만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집까지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마을버스인데 절대 중단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청각장애인 신모(80)씨는 "금천구청역에서 노인 일자리를 제공 받고 있는데, 집에서부터 40분 이상 걸린다"며 "관절이 아파 오래 걸을 수 없고 마을버스가 멈추면 출근 자체를 못하는데 너무 막막하고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백모(85)씨는 "심장도 안 좋고 무릎 두 곳 다 작년에 수술해 의사가 많이 걷지 말라고 했다"며 "이동할 때마다 나는 5번을 쉬어가 15분 거리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골목길 효자인 마을버스가 없으면 나는 어디에도 못 갈것"이라고 울먹였다.


13일 '은평10번' 마을버스 종점지 은평구 산새마을 버스정류장 인근, 경사가 가파른 경사길을 걷는 주민.ⓒ데일리안

이처럼 안타까운 시민들의 우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문현 서울마을버스조합 이사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수입이 급감한데다 각 마을버스 업체에서 현재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재정적자가 심각해 6월1일부터 마을버스 운행을 중단을 하는 것"이라면서 "시내버스나 지하철은 적자를 보전해주는데 마을버스만 안 해주니 운행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을버스는 시(市)가 예산으로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서울 시내버스 등과 달리 예산 지원을 받지 않는 민영제다. 서울시는 적자가 난 마을버스 업체에 시내버스나 지하철로 환승했을 경우 할인해 주는 요금의 일부만 보전해주고 있다. 현재 마을버스 요금은 성인 교통카드 기준 900원이지만, 업계로 돌아오는 금액은 336원에 그친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서울 마을버스 승객수와 운송 수입금은 무려 27%나 감소했다.


마을버스 요금 인상이 절실하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현재 서울 마을버스 요금은 어린이는 300원, 청소년은 480원으로 14년째 동결 상태다. 일반 성인 요금은 교통카드 900원, 현금 1000원으로 6년째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마을버스 운전 15년 경력 김모(67)씨는 "환승하는 손님들은 마을버스를 사실상 공짜로 타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수년째 마을버스 요금은 동결 상태"라면서 "마을버스 요금인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서울의 마을버스가 준공영제에 포함되지 않으니 적자가 나면 고스란히 민간 마을버스 업체들이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다"며 "이렇게 계속가면 시장 논리에 따라 요금 수익이 나지 않는 교통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교통기본권이 절실한 교통약자들의 처지를 우선 생각해야한다"며 "마을버스 요금을 인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제에 시내버스처럼 마을버스도 시나 구에서 재정적자를 보전해주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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