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성능으로 게임 ‘쌩쌩’ 고용량 동영상 전송 ‘1초컷’
HW만 보면 맥북 대체…멀티태스킹 불편한 OS는 한계
지난해 11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M1’ 반도체 칩은 애플과 안 어울리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수식어를 안겨줬다.
M1을 탑재한 맥북 값이 싸진 게 아니다. 갑자기 성능이 너무 좋아져 버린 탓에 가성비가 뛰어나 보이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타사 제품과 비교해보면 압도적 성능으로 칩 교체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그런 M1이 이번에는 태블릿 안으로 들어왔다. 태블릿과 PC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는 해도, 배터리로 돌아가는 태블릿이 전원을 공급해 사용하는 PC의 성능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지난 1일 출시된 ‘아이패드 프로 5세대’ 11인치 모델을 애플에서 대여해 사용해보니 이제 태블릿이 성능 면에서는 충분히 PC를 대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패드 프로는 이름처럼 ‘프로’를 위한 제품이다. 100만원대로 고가인 만큼 단순히 ‘넷플릭스 머신’으로 쓰려고 투자하기에는 낭비일 수 있을 것 같다.
성능을 테스트하는 데는 게임만한 게 없다. 펄어비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검은사막 모바일’을 구동해보니 고해상도 그래픽을 초당 60까지 렌더링한다는 애플 설명이 실감 났다.
30여분간 게임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캐릭터와 배경 디테일도 뭉개지는 부분 없이 생생했다.
M1칩으로 기존 모델 대비 중앙처리장치(CPU)는 최대 50%,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최대 40% 성능을 향상시킨 덕분이다. 위아래에 달린 쿼드(4개) 스피커가 뽑아내는 소리는 게임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동영상을 편집하거나 대용량 파일을 불러올 때 진화한 칩에 대한 만족도가 극대화됐다.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아이패드로 가져올 때 1초당 최대 40기가비피에스(Gbps) 속도로 순식간에 전송되며 성격 급한 사용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기존에는 300만~400만원대 데스크톱에서만 고용량 파일을 지연 없이 다룰 수 있었다면, 이제 태블릿으로도 이러한 작업이 수월해졌음을 뜻한다.
이번 신제품의 백미는 12.9인치 모델에만 탑재된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백라이트가 표현하는 ‘리얼블랙’이다. 다만, 미니 LED가 적용되지 않은 11인치 모델도 일상적인 사용에서 디스플레이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진 않았다.
M1 성능은 앞서 설명처럼 나무랄 데가 없다. 그보다 더 궁금했던 건 ‘태블릿이 PC 사용성을 대체할 수 있게 됐느냐’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반이다. 트랙패드가 달린 ‘매직키보드’를 붙여서 쓰니 하드웨어(HW)적으로는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편리했다. 물론 매직키보드에는 ESC 키가 없고(다른 키에 할당해서 쓸 수는 있다) 트랙패드 크기도 노트북에 비하면 3분의 2가 채 안 될 정도로 작긴 하다.
하지만 ‘화면이 터치되고 애플펜슬로 필기도 할 수 있다’는 태블릿의 장점에 노트북 생산성이 추가된다고 따져보면 당장 환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혹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 무릎에 올려두고 기사를 쓰면서 ‘태블릿과 키보드가 분리돼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자성이 강해 힘을 꽤 줘야만 분리됐고 세게 타이핑을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운영체제(OS)다. 맥OS와 비교하면 아이패드OS는 문서작업이나 웹서핑을 할 때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기는 하다. ‘스플릿뷰’ 기능으로 화면을 분할해서 쓸 수 있는데, 사용자 입맛대로 두 화면 크기를 조정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슬라이드 오버’ 기능으로 여러 창을 띄울 수도 있지만, 노트북에서 창을 띄워놓고 작업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불편했다.
여러 창을 띄워놓는다고 해서 노트북처럼 마우스나 키보드를 통해 직관적으로 창을 전환할 수 없었고, 적응기를 거쳐도 툭하면 창이 닫혀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OS 자체가 노트북보다는 스마트폰과 더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으로 문서작업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차라리 맥북과 화면을 연동해 듀얼 모니터로 사용하는 ‘사이드카(Sidecar)’ 기능을 활용할 때 가장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생산성이 대폭 향상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 쓰기 위해서라면 고가의 프로 모델보다는 아이패드 에어나 하위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PC와 태블릿은 엄연히 용도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오히려 불편해하고 터치와 애플펜슬 필기 방식이 익숙한 Z세대는 노트북보다 태블릿 생산성을 더 뛰어나게 여긴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M1칩으로 태블릿 두뇌가 PC처럼 똑똑해진 만큼, 아이패드가 맥OS화 되길 기다리는 사용자들도 많다. 애플이 오는 8일 진행하는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에서 보다 진화한 아이패드OS를 내놓을지 팬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아이패드가 맥OS처럼 변하면 13인치 맥북 포지션이 애매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대체 불가능하게 설계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애플 입장에서는 맥북도 팔고 아이패드도 파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두 OS가 서로 닮아가긴 하지만,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통합시키기보다는 선을 그어놓고 최적화 작업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태블릿과 별개로 이번에 출시된 ‘화이트’ 색상 키보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이패드 프로 실버 모델과 조합하니 책상에 가만히 올려두기만 해도 흐뭇해질 만큼 외관이 뛰어나다.
대신 새하얀 만큼 때가 잘 탈 것 같아 불안했다. 겉은 물티슈로 닦을 수 있어서 괜찮지만 아이패드가 자석으로 부착되는 면은 부들부들한 재질로 돼 있어서 때가 타면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키보드 하나에 웬만한 태블릿 값인 ‘40만원을 태워’야 하는 만큼 만듦새는 훌륭하다. 특히 트랙패드는 서드파티 업체 제품과 비교를 불허한다. 타건감도 가볍게 통통 튀지 않아 만족스럽다.
최대한으로 구부러지는 각도가 정해져 있어서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책상에 주로 올려놓고 쓰면서 특별히 불편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이전 세대 모델과 ‘연동’이 잘 안 된다는 이슈가 있었지만, 애플에 따르면 문제없이 잘 연동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