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흔들리는 4050, 잡아 줄 손 어디에 [장정욱의 바로보기]


입력 2021.09.03 07:01 수정 2021.09.03 05:12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IMF·금융위기 겪은 4050세대

급변하는 환경 적응 어려운데

청년 위기만 집중하는 정부

정부가 다양한 청년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4050 세대가 상대적 소외감을 호소하는 가운데 한 중년 남성이 일자리 박람회 채용 공고판을 보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세상은 무섭게 변하는 데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더라. 앞으로 30년은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 너는 그런 걱정 안 되냐?”


A는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15년째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 B의 한숨 섞인 고민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단순히 회사 일이 힘들어서 내뱉은 푸념이라 치부하겠지만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B뿐만 아니라 주변 또래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1978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넷인 A와 B, 그리고 그 또래는 1997년 대학교 1학년 나이에 ‘외환위기’를 만났다. 스무 살의 그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막연히 두려우면서도 자신들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IMF 사태가 세상을 바꿔 놓았다는 걸 깨달은 건 2~3년쯤 지나서였다. 군대를 다녀오니 그들의 부모는 전혀 명예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명예퇴직’ 대상이 돼 있었다.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에 공무원이 있었고 놀기 좋아하던 대학 동기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A와 B는 그렇게 IMF 사태가 열어놓은, 새롭지만 반갑지는 않은 세계와 마주했다.


세월이 지나 그들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IMF 사태가 바꿔 놓은 세상에 열심히 적응하며 사회 중심 세대가 됐다. 그 과정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맛봤다. 풍파를 거치며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게 편하고, 도전보다는 편안한 삶을 기대하는 나이가 됐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그들 바람과 너무 다르다. 세상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리 변하고 있다. A와 B가 가진 작은 기술이나 경험은 머지않아 구석기 유물 취급을 받을 것만 같다. 미래가 두렵다.


가장 큰 걱정은 일자리다. 지금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언제든 회사 밖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A와 B는 직접 목격해왔기에 더욱더 두렵다.


한 구직구인업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4050세대 68%가 이직 또는 전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직장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지금 아니면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달 31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일자리 예산으로 31조3000억원을 투입하는데 4050세대를 위한 예산은 보이지 않는다. 105만 개에 달하는 공공일자리와 청년 고용 활성화를 위한 예산, 여성 가장, 위기 청소년 등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돈을 제외하면 남는 예산이 별로 없다.


올해 예산도 비슷했다. 청년층 일자리 사업 예산은 전체 일자리 예산에서 16.9%를 차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대비 12.2%p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중장년층 대상 일자리 사업 예산 비율은 0.5%에서 0.3%로 0.2%p 줄었다.


한 네티즌은 “청년 취업시키면 지원금 주는 역차별적 정책 때문에 40대 가장들은 전부 퀵이나 택배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친구 A와 B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 보자. B는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 내내 다음과 같은 질문을 A에게 던졌다.


“요즘 ‘메타버스’라는 게 뜬다며? 그걸 배워볼까? 코딩 같은 건 얼마나 배워야 써먹을 수 있지? 그나마 머리가 조금이라도 덜 굳었을 때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어딜 가야 배울 수 있나? 배우면 잘할 수 있을까?”


A가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B 역시 A에게 해답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현재 4050세대는 1997년 IMF, 2008년 리먼 브라더스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에 처해 있다. 단순히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0대와 달리 4050세대는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다. 그렇다고 6070세대처럼 경제활동 부담을 다소나마 내려놓을 상황도 아니다. 어느 세대보다 어깨에 지워진 짐이 많다.


4050세대도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어쩌면 청년, 노년층보다 더 애절한지도 모른다. “낭떠러지로 향하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서 있는 심정”이라는 B의 말을 지나친 표현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