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타 면제 기준 대폭 완화
검증 안 된 개발 사업 물꼬 열어
국회예산정책처 “정책 효과 의문”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각종 규제 완화와 예산 지원을 통한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업성이 떨어져 제동이 걸렸던 사업이 규제 완화로 재추진 되거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재정 지원 정책들이 무더기로 확대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4일 17개 광역단체장이 참가한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 행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광역지자체를 연계하는 도로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총사업비가 1000억원 미만이고 국고 지원이 500억원 미만인 경우 예타를 면제하겠다고 했다.
예타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을 사전 검토하는 제도다.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 사업성이 낮은 정책을 미리 걸러내는 장치다. 이 때문에 임기 말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예타 기준을 낮추는 건 결국 표를 의식한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남해~여수 해저터널 건설 사업이 국토부 제5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2021~2025)에 포함됐다. 경남 남해 서면과 전남 여수 상암동 간 5.93㎞를 잇는 해저터널 건설 사업으로 예산은 6824억원 규모다.
해당 사업은 남해지역 숙원으로 2002년부터 추진됐지만 번번이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좌절됐다. 2016년 당시 경제성분석(B/C) 값이 0.33에 그칠 정도로 사업성이 낮았다. 그런데 지난 8월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예타 심의를 통과하면서 사업 물꼬가 트이게 됐다.
청년 주거 부담 완화와 자산 형성을 목적으로 내놓은 청년월세지원과 청년통장 사업은 국회예산정책처가 문제 삼을 정도다. 청년월세는 정부가 무주택 청년에게 월 20만원씩 최대 1년간 지원하는 내용이다. 청년통장은 청년내일저축계좌와 청년희망적금, 청년형 소득공제 장기펀드 등 정부 지원 사업을 말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내년도 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사업비가 3000억원인 청년월세 특별지원사업이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법에 규정된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결과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통장 사업 또한 “자산 형성 사업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대중교통 이용 때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하는 경우 거리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알뜰교통카드 모바일 서비스’도 지난달 전국 확대를 결정했다. 마일리지(20%) 적립과 카드사 추가할인(10%)마일리지(20%)를 지급하고 카드사 추가할인(10%)을 통해 출퇴근 교통비를 최대 30% 이상 줄여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그동안 수도권·대전·세종·제주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서비스가 이뤄졌다. 서비스에 대한 효과 검증도 없이 규모가 커졌다. 마일리지 비용은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전국 확대를 결정이 나오다 보니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부권광역급행철도(GTX-D노선) 노선은 사업성 고려 없이 주민 요구를 수용해 신도림과 여의도, 용산까지 연장했다. 이번에 유류세를 역대 최대폭으로 인하한 것도 정책적 효과보다는 선거용 표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재정을 정치화하고 있는데 민주당 입장에서는 여당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하고 싶을 것”이라며 “임기 말 선심성 정책으로 정권 연장을 시도하는 건 매번 있었던 일이고, 이번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광역 사업을 빌미로 중앙정부가 지역 예산을 퍼주겠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