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본집 12종 출간...지난해엔 46종으로 크게 증가
지난해 대본집 판매 성장률 73.3%...'그 해 우리는' 1위
드라마를 즐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드라마 팬들은 60분짜리 영상 한 편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화질 캡처 후 블로그 리뷰를 작성하거나 움짤(움직이는 그림파일)을 만들어 공유한다. 또 주요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분석해가면서 드라마 속에 숨은 일종의 ‘떡밥’을 찾아내고 회수하는 수고도 마다않는다. 여기에 주․조연 배우는 물론 단역 배우의 이력을 찾아내고, 제작사에서 진행하는 각종 이벤트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팬들의 드라마 소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이, 서점가까지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대본집 구매 열기가 뜨겁다. 연출과 연기, 편집이 된 총체적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기존 대본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고 사소한 것까지 챙겨 분석·예측하는 것이 드라마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는 셈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최근 드라마 대본집 판매량이 크게 상승해 올해 1월부터 3월14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2.7배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0년 영화 ‘기생충’ 대본집이 영화 인기에 힘입어 큰 관심을 모은 이후, 대본집 판매량이 주춤했으나 올해 들어 다시 한 번 판매량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출간 종수도 크게 늘었다. 매해 50~60편 정도 출간됐던 대본집은 지난해 82종으로 크게 늘어나며 최근 출판계 대본집 출간 트렌드를 보여줬다. 올 들어서는 3월까지 17종에 달한다.
집계 방법이나, 기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서점의 상황도 비슷하다. 예스24 역시 TV드라마·영화·뮤지컬 등 모든 대본집의 연도별 출간 종수를 살펴보면 10년 전인 2012년 12종에 불과했던 대본집은 지난해 46종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 3월까지 21종이 출간되면서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1월 종영한 SBS ‘그 해 우리는’과 MBC ‘옷소매 붉은 끝동’, 3월 막을 내린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등 대본집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그 해 우리는’의 경우 총 2권으로 나눠 출간됐는데, 출판사인 김영사에 따르면 이 책은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1·2부를 합쳐 10만부를 돌파했다.
이처럼 대본집이 판매에서도 성공을 보이자 과거 유명했던 드라마의 대본집이 뒤늦게 출간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방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본집은 지난달 15일 출간됐는데, 예약판매만으로 인터넷주간 베스트셀러 예술 분야 1위를 차지했다. ‘나의 아저씨’는 방영 당시에도 작품성은 물론 좋은 대사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연도별 판매 성장률로도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예스24 대본집 판매 성장률은 2017년 55.0%, 2018년 8.1%, 2019년 0.7%, 2020년 99.7% 그리고 지난해 73.3%로 집계됐다. 올해 판매 성장률을 집계할 순 없지만 업계에선 현재까지의 판매량과 판매 종수로 미루어 볼 때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큰 폭의 성장을 보여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종영하면 드라마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시청자들을 위해 포토에세이, 대본집이 출간되는 건 출판계에서 이미 익숙한 익이다. 그런데 최근처럼 드라마 종영과 동시에 경쟁적으로 대본집과 포토에세이가 출간되고, 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을 독차지하는 상황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서는 유독 대본집의 인기가 더 뜨거웠다.
JTBC ‘서른, 아홉’과 ‘기상청 사람들:사내연애 잔혹사 편’ 등은 드라마 방영 초기부터 대본집 출간을 계획했고, 일찌감치 예약판매를 시작했다. 두 드라마 외에도 ‘술꾼도시여자들’ 등 드라마 방영 초기부터 대본집 출간을 논의하는 출판사와 제작사가 많아지면서 대본집 전성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예스24 에세이/예술/자연과학 분야 김유리 MD는 “최근 마니아층을 형성해 화제가 되는 TV드라마·영화의 경우 소비 형태가 단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에서 이미지나 영상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모습을 띈다”면서 “이런 활동의 소스가 되고,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한다는 의미에서 대본집이나 포토 에세이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출판사나 서점 측에서도 영상물에 관련한 콘텐츠의 구매 파급력 등을 인지하기 때문에 기존과 같이 드라마나 영화가 공개된 이후에 대본집을 출간하는 것은 물론, 최근 들어서는 방영 초반부터 타깃에 맞출 프로모션을 적극 진행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