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집 중복 구매 증가...아이돌 굿즈 대량 구매 현상과 유사
'오리지널 콘텐츠' 아닌 '부속 상품' 인식은 아쉬워
# 직장인 고윤희(여·34) 씨는 지난 2018년 종영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자신의 ‘인생 드라마’로 꼽는다. 그는 “종영한지 벌써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나의 아저씨’ 대본집 출간은 고씨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고씨에겐 대본집이 하나의 ‘굿즈’가 된 것이다. 그는 “대본집이 출간되자마자 주문했다. 그 당시 영상미나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대사에서 많은 감명을 받은 만큼, 그 이야기를 ‘소장’할 수 있다는 것이 더 반가웠고, 드라마 팬으로서 유형의 굿즈를 소장할 수 있게 됐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조사 결과 대본집 구매 독자를 살펴보면 여성과 남성 독자의 비중이 각각 74.1%와 25.9%를 차지하며 여성 독자 사이에서 더 많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연령대별 구매층은 20대가 36.2%로 가장 많고 30대가 28.5%로 뒤를 이어 젊은 세대 사이에서 구매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계에서는 대본집이 책의 개념이 아닌 소장품이나 일종의 굿즈로 인식돼 젊은 독자들, 특히 젊은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 구매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해석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본집을 구매해 소장하는 것을 통해 팬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로 마치 아이돌 음반을 대량 구매하듯 대본집을 2, 3권씩 중복 구매하는 드라마 열성 팬들의 사례도 온라인을 통해 종종 목격된다. 즉 이들에게 대본집은 독서의 의미를 넘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소장한다’는 의미가 강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대본집은 출판계에서 새로운 구매층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책을 구매하거나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도서라는 것이다. 실제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대본집을 출간한 출판사 김영사의 경우도 주요 구매층이 아니었던 10·20대 독자들 사이에서 대본집이 판매량 1위를 차지하며 구매층을 확장했다.
더구나 최근 OTT나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영상 콘텐츠의 위세가 점점 커지고, 한국 드라마도 전 세계적인 인기와 맞물려 대본집의 수요가 덩달아 늘어났다는 점도 대본집이 굿즈의 역할로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엔 포토에세이나, 대본집 등의 저작권 구매를 위한 해외 출판사들의 러브콜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책(대본집)이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닌 일종의 ‘굿즈’ 또는 ‘부속 상품’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 씁쓸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 관련 책 출간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다른 책들이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도 연출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런 지적은 출판업계 관계자들 역시 인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굿즈’로서의 역할을 넘어 하나의 ‘도서’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대본집이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에게 하나의 ‘교본’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방송으로는 볼 수 없었던 인물설정 과정과 작품의 세계관 설정, 타임라인, 공간설정·구상 관련 자료 등을 삽입하는 식이다.
강현지 에디터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킬 만큼 그 가치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대본집이) 굿즈의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본집은 굿즈 이상의 가치 역시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에 비유하자면 GV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영화 상영 이후 감독, 배우, 평론가 등과 그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참여해 대화를 나눈다. 무대 인사와는 또 다른 개념”이라며 “대본집(책)이 독자에게 GV의 기쁨을 선물하기에 충분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굿즈의 의미를 넘어 작품에 깊이 빠져들고 풍요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