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 만찬 뒤로하고 경제 ‘올인’
물가, 유가 등 대외 요인에 불안 여전
세제개편, 야당 부자 감세 비판에 발목
재정건전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성과
오는 17일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100일을 맞는다. 유례없는 세계적 고물가 시기에 경제 사령탑을 맡아 고군분투한 추 부총리의 100일을 평가하자면 ‘고삐 죄는 재정, 논란 속 감세, 아쉬운 물가·혁신’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난 5월 10일 취임한 추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물가 등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거시경제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에 비상경제대응 TF를 즉시 설치해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과감한 규제혁신 등을 통해 창의적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고 모래주머니를 벗겨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대통령 취임 만찬에도 불참하면서 도시락 회의를 통해 대책을 찾았음에도 국제유가와 환율 등 대외 요인으로 물가는 치솟기만 한다.
취임 당시(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 올라 2008년 8월(5.6%) 이후 가장 높았다. 6월에는 전년동기대비 6% 오르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였던 1998년 11월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 기록을 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7월에도 상승세는 계속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를 기록하면서 23년 8개월 만에 최고 물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 할당 관세 품목 확대, 단순 가공 식료품 부가가치세 면제, 추석 성수품 할인 쿠폰 확대 등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놨다. 그렇지만 물가 상승세는 여전하다. 그나마 최근 미국 물가 상승세가 주춤한 것과 지난해 하반기 물가 상승이 컸던 탓에 기저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추석 이후 물가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위안 요소다.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물가 상황에서 추 부총리의 향후 정책 방향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은 ‘감세’다. 지난달 정부는 ‘2022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기로 했다.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와 투자 세제지원을 강화해 경제 활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정부 세제개편은 일부에서 ‘부자 감세’ 논란을 불렀다.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감면으로 야당에서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감세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부자보다는 서민층에 더 큰 감세효과가 있다고 반박하면서 국회 관련 법안 처리에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 세제개편 가운데 상당 부분은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여소야대’인 국회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문제다. 야당을 설득하지 못해 관련 법 처리가 안 되면 사실상 정부가 그리는 세제 감면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규제개혁 부문도 아직은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규제개혁은 윤 대통령이 당선인 때부터 약속해 왔고, 정부 출범 직후 민관합동 테스크포스(TF)까지 꾸릴 정도로 의지가 높다.
추 부총리는 현장에 접목할 구체적 정책들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지난 6월 규제개혁과 민간투자에 방점을 찍은 경제 정책 방향을 발표한 것 외는 이렇다 할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규제개혁과 관련해 중소기업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이 대표적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보호장치를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푸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 정책 가운데 현재 가장 속도를 내는 것은 재정건전성 강화다. 재정건전성은 추 부총리가 취임 전부터 지속해서 강조해왔던 대목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 13일 내년 본예산 총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 말대로 된다면 이듬해 본예산 총지출이 전년 전체 지출보다 줄어드는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참고로 올해 총지출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합쳐 679조5000억원이다.
추 부총리는 고랭지 배추 재배지인 강원도 강릉 안반데기를 방문한 뒤 오찬 기자간담회 “현재 역대 최대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부채 증가 속도를 줄이는 차원에서 국고채 발행도 조금 줄여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한 공공기관 경영혁신도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최근 수년간 공공기관 방만 경영과 도덕성 해이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강도 높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이번 주에는 정부가 빚을 줄이거나 수익을 늘려 재무 상태를 호전시킨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더 주는 내용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개편안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제9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상정·의결했다. 내년부터 공공기관 정원을 줄이고 인건비, 부서 운영비, 업무추진비 등 고정적으로 반복 지출되는 경상경비 예산을 10% 이상 감축하는 게 핵심이다. 골프장 회원권 등 직원 복리후생에 사용한 불필요한 자산도 매각을 추진한다.
전문가들은 추 부총리 취임 100일을 대외 요인으로 인한 어려움이 컸다면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에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뭔가 달라지겠구나’ 했는데 여전히 민생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정부 부채 증가, 외부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유와 식량 가격 인상 등 내우외환 상황은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한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규제개혁, 긴축 재정 등 방향은 괜찮은데 속도와 강도가 더디다”며 “노동 개혁, 연금 개혁 등도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