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美 전용공장 파트너십 두고 LG·SK 경쟁 심화될 듯
미국의 고강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으로 현대자동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공장 투자 시계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배터리 파트너사로 어느 기업이 낙점될 지 관심이다.
미국의 철저한 중국산 배제로 K배터리사를 대표하는 LG에너지솔루션 또는 SK온이 현대차·기아와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양사와 골고루 협력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4300억 달러(약 561조원)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을 통과하면서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투자 일정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해당 법안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광물 비중을 40%로 늘리고, 배터리 등 주요 부품도 50%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한 제품을 장착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원자재·부품 수급 대상을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들로만 한정해 사실상 중국, 러시아 등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의지다. 뿐만 아니라 최종 조립도 북미만 한정해 그 외에서 조립되는 차량은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완성차업체들은 내년부터 북미산 광물·부품이 탑재된 전기차를 북미 현지에서 생산·판매해야만 보조금(7500 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현대차·기아를 포함해 북미 밖에서 생산·수출하는 대부분의 완성차업체들은 불이익을 볼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미국의 철저한 자국산 정책으로 북미 현지에서 생산하는 테슬라, 포드, GM, 리비안 등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연합은 IRA를 두고 "해외 자동차 회사들은 차별하는 것"이라며 "WTO(세계무역기구) 규범과 상충한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한미 FTA에와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등 통상규범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미 통상당국에 보조금 지급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아시아와 유럽 등을 위한다는 이유로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적다. 결국 미국 현지 투자를 진행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자 속도를 전면 수정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용 전기차 공장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앞으로 3년간 GM, 테슬라 등 주요 글로벌 업체들이 보조금 혜택을 무기로 현지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일정 수정이 불가피하다.
주요 업체들이 보조금 혜택을 휩쓸게 되면 보조금 지원을 받지 못한 현대차·기아는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사라져 자칫 현지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 그 때 가서 아무리 디자인·품질 경쟁력이 좋은 전기차를 내놓는다고 한들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기까지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전용공장 투자에 속도를 내게 되면 부품 조달을 위한 배터리셀 공장 투자도 덩달아 앞당겨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완성차 공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접 부지에 배터리셀 공장을 짓겠다고도 했다.
현대차그룹측은 구체적인 계획은 추후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나 미국의 중국산 배제 기조 등을 감안하면 미국에 가장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또는 SK온과 협업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인도네시아 합작공장 등 현대차그룹과 한 차례 손잡은 전력이 있는 만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카라왕 지역의 신 산업 단지내 들어서는 배터리셀 합작공장은 2023년 상반기 완공, 2024년 상반기 중 배터리셀 양산을 목표로 한다.
조지아 공장에 배터리셀 공장을 두고 있는 SK온은 높은 인접성을 근거로 현대차그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배터리를 적시에 생산, 판매하는 데 가장 유리하다.
일각에선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전략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나란히 배터리 물량을 수주한 점을 들어 미국에서도 골고루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SK이노베이션은 'E-GMP' 플랜에 발 맞춰 국내에서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7 배터리를, LG에너지솔루션은 아이오닉 6 배터리를 각각 공급할 예정이다. 올해 공급되는 아이오닉 6에는 SK온 배터리가 탑재된다.
양사는 모두 고효율·고성능·안전성이라는 기술 우위를 인정 받아 미국 완성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과 협업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도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만간 파트너사를 선택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강력한 자국산 정책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 속도가 한층 빨라지게 됐다"며 "전기차 투자는 배터리 투자도 포함하는 만큼 조만간 완성차-배터리사 일정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