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소송 잇따르며 '노동 유연성 마지막 보루' 소멸 위기
업황사이클 타는 제조업, 정규직 무한정 채용은 무리
자회사 설립 통한 하청 근로자 정규직 채용은 적절한 '절충점'
제조업은 업황에 따라 일감이 크게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제품이 잘 팔린다고 무턱대고 직원을 많이 고용해 사업을 확장했다가는 불황기에 막대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위기에 처하기 십상이다.
10여년 전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인위적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업에게 채용 확대는 곧 리스크 상승인 셈이다.
이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은 작업물량의 일부를 하청을 주는 하도급 방식을 도입했다. 다수의 기업은 하청 근로자들이 회사 내에 들어와 작업하는 방식이라 ‘사내 하도급’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최근 이 하도급이 제조업 분야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하도급 근로자들이 원청 기업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승소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자동차, 철강 등 제조업 분야 다수의 기업들이 소송에 휘말렸다.
승소 판례에 해당하는, ‘원청의 직접 작업 지시’가 있었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한 근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경비, 청소 등 원청 작업과 무관한 용역 근로자들까지 소송 대열에 합류했다.
하도급법에 근거한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으로 합법적 하도급을 운영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업들로서는 억울한 노릇이지만, 하도급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 정규직이 될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노동 유연성 확보의 마지막 보루가 사라지면서 나타날 부작용이다. 일단 사내에 발을 들여 놓으면 직접고용을 강제당할 리스크가 생기니 과거와 같은 하도급 운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단기적 인력 수요를 무조건 정규직(고가의 인건비가 소요되는) 채용으로 충당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과거 원청 정규직이 아닌 하도급 근로자 신분임을 분명히 인지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기꺼이 택했던 일자리가 앞으로는 아예 사라져버릴 공산이 크다.
이 골치 아픈 문제의 해법을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제시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8일 모듈과 부품 제조 영역을 전담할 2개의 생산전문 통합계열사를 설립해 100% 자회사로 편입한다고 밝혔다.
기존 하도급 협력사의 인력을 본사가 아닌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내용이다. 하청근로자를 본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조직 비대화와 인건비 부담 등의 부작용을 피하면서 사내하청 파견근로자 관련 리스크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사실 현대모비스가 ‘원조’는 아니다. 현대제철이 지난해 현대ITC·ISC·IMC 등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 상당수를 고용하며 불법파견 문제를 해소한 선례를 남겼다.
물론 하청근로자 입장에서는 자회사보다 본사 정규직이 더 탐날 수도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 자회사 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본사와 동일한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되, 임금은 본사의 80% 수준을 지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하청 근로자들이 반발하며 자회사 입사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들이 입사한 회사의 근로조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정기간 근무 후 원청 정규직 채용’이 조건이었는데 사측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규직 채용을 무작정 늘릴 수 없는 제조기업의 형편과 하청 파견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근로자들의 염원 사이에서 절충점이 필요하다.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설립이 좋은 모범사례일수 있다. 다른 제조기업들은 물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는 노동계도 전향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