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350원 돌파…1400원대 눈 앞
물가 상승세 하락 전망한 정부 ‘위기’
천연가스·원자잿값 상승에 물가 불안
한은 “환율, 물가 상승 압력 가능성”
원·달러 환율이 예상보다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따라 9월이면 물가가 정점을 찍을 거라던 정부 기대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난달 31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52.3원까지 급등했다. 지난 29일 1350.8원이던 연고점을 이틀 만에 갈아치웠다. 글로벌 외환위기였던 2009년 4월 29일 1357.5원 이후 13년 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달러 초강세 현상을 일컫는 ‘킹 달러(king dollar)’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300원대를 쉽게 뚫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석 달이 지난 현재 1300원대는 물론 1350원을 넘어 1400원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시장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둔화한다는 기대감 때문에 환율 상단은 1370원으로 열어두고 있다”며 “다만 강달러에 중국과 유럽 악재가 중첩되는 최악의 경우 원·달러 환율도 1400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계속 이어온 물가 상승세가 9~10월을 정점으로 한풀 꺾일 것으로 기대해 왔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정부 예측 이상 치솟으면서 ‘가을 물가 정점’ 전망이 빗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원·달러 환율이 1270원대를 오르내리던 지난 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 올라 2008년 8월(5.6%) 이후 가장 높았다. 6월에는 전년동기대비 6% 오르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였던 1998년 11월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 기록을 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7월에도 환율과 함께 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를 기록하면서 23년 8개월 만에 최고 물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다소 내림세를 보이면서 8월 물가 상승 폭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8월(2.6%)과 9월(2.5%) 소비자물가지수가 정부 물가안정목표(2.0%)를 웃돌았던 만큼 ‘기저효과’도 기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KBS 뉴스9에 출연해 “7월에 물가가 6.3% 올랐는데 현재로 보면 8월에 6%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제 유가가 하락 안정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연일 치솟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환율까지 더해지면서 물가 악재가 쌓이는 형국이다.
지난달 31일 현재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MMBTU(천연가스 부피 단위) 당 9.04달러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1일 5.73달러보다 3.31달러(36.7%) 이상 올랐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국내 도시가스 요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국가스공사가 비싸게 구매해 온 천연가스를 싼값에 판매하면서 떠안은 손실이 5조원을 넘어서자 정부는 요금 인상을 사실상 결정한 상태다.
전기요금도 한국전력공사 연간 적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여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미 지난해 말 정부는 연료비 상승을 고려해 올해 4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연료비를 kWh당 4.9원씩 인상하기로 한 바 있다.
도시가스와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초강세를 보이면서 원자잿값 인상도 불가피하다.
지난달 30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수입물가 상승의 산업별 가격 전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 수입 물가가 1%p 상승하면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0.13%p 오른다. 에너지·금속 등 광산품보다 곡물 등 농수산품이, 중간재보다는 원자재 수입 물가가 오를 때 생산자물가가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상반기 기준 수입 원자재 가격은 1년 전보다 67.7% 올랐다. 이 가운데 국제 원자재 가격에 따른 인상 요인은 47.0%p,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요인은 7.1%p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은 “올해 빠르게 상승한 수입물가는 국내 생산되는 재화·서비스 가격으로 전가돼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켰다”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등락을 반복하더라도 이는 물가 상승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킹달러 생존법②] 무역 악화·경기 둔화·서민 고통…쌓여가는 ‘리스크’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