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난, 美 IRA 등으로 어려운 경영환경 더욱 악화 우려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로 출고 대기기간 더 길어질 듯
퇴직자 복지 과다로 대량해고 사태 이른 美 빅3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기아 노조가 퇴직자 복지 혜택 유지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다. 회사의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는 물론, 소비자들도 오랜 출고대기로 고통 받는 상황마저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잇속만 차리는 행태라는 비난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기아 노조)는 이날 쟁의대책위원회(쟁대위) 회의를 열고 오는 13일 2시간 중간 파업을 시작으로 14일에는 4시간 퇴근 파업을 단행키로 결정했다. 생산차질 만회를 위한 특근도 전면 거부할 예정이다.
앞서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쟁의조정 중지 결정을 받았으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가결돼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한 상태다.
기아 노사는 지난 8월 30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으나, 노조가 지난달 2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임협만 가결되고 단협은 부결됐다.
이후 임단협 재교섭을 진행 중이었으나 결국 노조가 파업에 돌입키로 한 것이다.
노조의 파업 돌입 배경은 퇴직 후에도 차량 구입 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평생 사원증’ 유지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사원증 제도는 기아가 25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 2년에 한번씩 신차 3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당초 1차 잠정합의안에 혜택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혜택 연령을 평생에서 만 75세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조합원들이 이에 반발하며 합의안 부결 사태가 벌어졌다.
사측은 재교섭 과정에서 퇴직 근로자 할인 혜택 조정 시점을 2026년부터로 유예하자고 제안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파업으로 압박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공급 부족,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어려워진 국내 자동차업계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주요 모델의 출고대기기간이 1년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까지 더해진다면 소비자들의 피해도 심해질 게 불 보듯 뻔 하다.
이번 파업의 주요 원인이 재직자가 아닌 퇴직자의 복지 사항인데다, 기존보다 축소한 복지 조항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회사 경영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혀 가며 파업을 벌이는 게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부결된 1차 잠정합의안 내용을 보면 기아 노조의 파업이 ‘귀족 노조의 생떼’라는 여론이 나오기에 충분하다. 당시 임금안은 기본급 9만8000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경영성과금 200%+400만원, 생산·판매목표 달성 격려금 100%, 품질브랜드 향상 특별 격려금 150만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5만원, 수당 인상을 위한 재원 마련, 무상주 49주 지급 등을 담고 있었다.
또 ‘국내 공장(오토랜드)이 PBV 등 미래차 신사업 핵심 거점으로 거듭나도록 공동 노력한다’는 내용의 고용안정 합의도 이뤘고, 단협안으로 경조휴가 일수 조정 및 경조금 인상, 건강 진단 범위 및 검사 종류 확대, 유아교육비 상향 등에도 합의했다.
사측은 제조업 최고 수준의 임금과 각종 복지에도 퇴직자 차량 구매 할인 제도 조정이라는 지엽적 이슈로 올해 임단협 타결이 무산된 것도 모자라 파업까지 이르게 된 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퇴직자 차량 구매 할인 연령을 75세까지로 제한한 것은 노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성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 우려 등을 감안했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사측은 퇴직자에 대한 과도한 복지를 조정하는 반대급부로 재직자 복지를 늘리는 방안을 내놨지만, 노조는 수용하지 않았다. 1차 잠정합의안 부결 이후에도 휴가비 인상 등 추가적인 복지 혜택 강화를 제시했지만 노조의 입장은 변화가 없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출고대기 기간이 길어 소비자들의 원성이 큰 상황에서 파업까지 더해진다면 노조는 ‘귀족노조의 과욕’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 자동차 빅3가 과거 퇴직자 의료보험 비용이 과도해 부도 상황까지 갔다가 해당 조항을 모두 폐지하고 수많은 근로자들을 해고한 뒤에야 기사회생한 사례가 있다”면서 “기아 노조도 그 꼴이 나지 않으려면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