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영역은 급격히 확대...법·제도 마련은 지지부진
현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감정'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
프랑스서 AI 작곡 프로그램 '에이바' 저작권자 인정 첫 사례
지난달 11일 우리나라 특허청은 ‘AI는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의 한 개발자가 열효율이 좋은 식품용기를 특허 출원했는데, 발명자가 자신이 아니라 AI라고 명기했다. AI가 순전히 혼자 힘으로 용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허청은 “발명자는 자연인에 한정한다”며 특허 출원을 반려했다.
AI의 창작 영역이 확대되고 능력이 고도화하면서 AI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 논의가 각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AI 산업 발전을 위해서 AI 창작물을 어떻게 보호하고 다룰 것인지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기술력은 창의성을 보여주는 수준까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관련 법과 제도가 이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2020년 12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소관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AI 창작물을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지, AI 창작물에 대한 사람의 관여도에 따라 저작자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AI 창작물의 저작자를 정하지 못하면 AI 구입도 개발도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며 “관련 산업과 문화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과학기술원이 개발한 작곡 AI ‘이봄’은 지난 6년간 30만 곡을 만들었고, 3만 곡을 팔아 6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가수 홍진영의 노래 ‘사랑은 24시간’ 등을 작곡해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봄이 만든 음악 6곡에 대해 저작료를 지급해 온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지난 7월 돌연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고 SBS는 보도했다. 사람이 아닌 AI가 작곡한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며 저작권료 지급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는 만큼, AI가 만든 작품을 저작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채널A ‘강철부대’ BGM, 드라마 ‘가우스전자’ 로고송, 오디오드라마 ‘어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OST 등을 AI 작곡을 통해 선보여온 지니뮤직 관계자는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저작물의 주체를 인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AI는 현재까지 저작권을 확보할 수 없다”면서 “AI 저작권 확보와 AI 창작물과 관련해 법률 적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에게 저작권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국내만의 이슈는 아니다. 미국 저작권청은 2월 ‘창의성 기계’라는 알고리즘이 만든 그림에 대해 저작권을 신청한 AI 개발자 스테판 탈러의 요청을 기각하면서 “AI가 그린 그림에 인간 저작의 요소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2016년 관련 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2018년 저작권법을 개정하면서 AI 알고리즘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를 규제 없이 쓸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AI 창작물을 세상에 알린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AI 저작권 개념을 넓혔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17년 AI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AI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보호 등의 법률 제정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음악저작권협회는 영국의 AI 작곡 프로그램인 ‘에이바(AIVA)’를 저작권자로 인정했다.
다만 AI 창작물을 기존 법제 내에서 다루거나 별도의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아직 없다. 카카오브레인 김세훈 리서치 디렉터는 “AI 모델의 저작권 부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많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현재 관련 기술이 성숙되고 있고 시장이 열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