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업무보고에 나온 '피해자' 용어에 격분
대통령실 "실무자 법률적 용어…의도성 없다"
與 "천안함 땐 왜 지적 안 했나, 정쟁 유감"
일각선 과거 '피해호소인' 용어 사용 지적
8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정부 측이 법률적 의미로 사용한 ‘이태원 피해자’ 용어의 수정을 대통령실에 공식 요구했다. 이태원 사고·사건은 '참사'로, 피해자는 '희생자'로 통일해 사용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국감 시작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한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의 주요 업무현황 보고 및 추진계획을 보면 '이태원 사고 후속조치'라고 돼 있다.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고 돼 있다"며 "아직도 사고로 인식하고 있다면 희생자 모독이고 희생에 대해 아파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김수흥 의원도 "이태원 참사냐 사고냐 가지고 논란이 있는데 저는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참사를 인식하는 자세의 문제다. 국민이 이 사고를 엄청난 참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보다는 참사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정부는 재난안전법률상에 규정된 법적 용어를 사용했을 뿐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명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중앙안전대책본부 실무자들이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용어 자체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저희도 참사와 희생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정부는 용어를 두고 논란이 일자 분향소 명칭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로 수정하는 등 빠르게 대처했다. 이날 업무보고에 나선 김 실장도 보고에 앞서 서두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용어 하나하나 시비를 걸며 정쟁을 부풀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입장발표를 보면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할 때라고 했고, 고민정 최고위원도 '사고 수습'이 우선이라고 했다"며 "이재명이 사고라고 하면 애도이고 정부가 사고라고 하면 잘못된 말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김미애 의원은 "참사라고 하면 깊이 슬퍼하고 사고·사건이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닌데 왜 논쟁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참으로 아쉽고 유감"이라며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돼 46명이 전사했을 때에는 왜 그런 논쟁을 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주호영 위원장은 "법률적 용어가 있고 또 아닌 게 있는데, 세상에 슬프지 않은 사망이 어디 있겠느냐"며 "어느 범위에서 참사라고 할 것인지, 또 어느 범위에서 사망이라고 표현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사망이라는 단어가 없어져야 한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그간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용어에 담아 정략적으로 이용해왔던 것은 민주당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률적 용어도 아니었으며 '성추행 피해를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담아 2차 가해로 이어진 바 있다. 비판이 빗발쳤으나 청와대나 민주당 지도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행정적 용어인 사고나 사망보다는 참사와 희생자가 국민감정에 더 가까운 단어이고, 정부의 초기 정무적 판단이 다소 아쉽다"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던 민주당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