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한화·교보생명 주도
RBC 비율 관리 강점 부각
국내 3대 생명보험사가 올해 들어 운용 방식을 변경한 채권 규모가 8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보험업계 전체의 이 같은 채권무브가 100조원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빅3 생보사가 주도하는 형국이다.
금리 인상에 맞춰 회계 상 보다 유리한 쪽으로 채권을 옮겨 담으려는 보험사들의 행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이런 리스크 대응도 대형사에게 유리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3개 생보사가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해 둔 유가증권 자산은 89조941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775.8%(85조1471억원) 늘었다. 만기보유금융자산은 그 이름처럼 금융사가 만기까지 보유할 적극적인 의도와 능력이 있는 금융자산을 가리킨다.
회사별로 보면 우선 삼성생명의 만기보유증권이 38조9456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5919.6% 급증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말까지 만기보유증권이 하나도 없다가 올해 들어 31조5541억원을 편입시켰다. 교보생명의 관련 금액도 19조4422억원으로 327.1%나 증가했다.
생보 빅3의 이 같은 채권 재분류는 보험업계 전체 물량 중 3분의 2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다. 조사 대상 기간 국내 모든 보험사의 만기보유증권 보유량은 283조6299억원으로 70.4%(117조1920억원) 늘었다. 증가액 가운데 3대 생보사의 비중만 72.6%에 이른다.
이들이 만기보유증권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은 매도가능증권에서 나왔다. 금융사는 갖고 있는 채권을 만기보유금융자산 또는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매도가능금융자산은 단기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자산도 아니고 회사채와 같이 만기가 있는 자산도 아닌 나머지 금융자산 모두를 일컫는 표현이다.
실제로 삼성·한화·교보생명의 매도가능증권은 191조647억원으로 37.7%(115조6627억원) 급감했다. 같은 기간 보험업계 전체의 매도가능증권 자산이 432조3128억원으로 27.1%(160조8746억원)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이 역시 감소폭의 대다수가 3대 생보사의 몫이었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채권을 다시 분류하고 있는 이유는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지급여력(RBC) 비율 악화를 막기 위해서다. RBC 비율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 때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숫자로, 보험사의 자산 건전성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다.
매도가능금융자산은 시장가치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금리 상승 시 채권가격 하락으로 인한 자본 감소가 반영되면서 RBC 비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럴 때 매도가능금융자산을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재분류하면 금리 변화가 반영되지 않아 자본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에 여유 있는 매도가능금융자산을 보유한 곳일수록 이처럼 채권 재분류를 통해 자산 건전성을 관리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는 얘기다. 자산이 많은 대형 보험사일수록 리스크 방파제가 더 견고한 셈이다.
문제는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4월부터 지난 달까지 사상 처음으로 다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로써 한은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3.00%대로 올라섰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번 달에도 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리스크가 보험사 재무 건전성에 미치는 충격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채권 재분류 버퍼가 큰 곳일수록 RBC 비율 방어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