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선총독부 청사하면 일제가 경복궁 자리에 세웠던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1926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는 2018년까지 서울 애니메이션센터가 자리한 곳이었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은 조선과 협의하여 일본인 거주지를 이곳으로 정하면서 사실상 굳어진 결과였다.
갑신정변 이후 남산 자락 일대 왜성대, 현재 예장동 일대에 일본 공사관을 이전 설치하였다. 일본 공사관을 시작으로 경성신사, 일본 사찰인 동본원사, 갑오역기념비(청일전쟁 기념비) 등 일제의 주요 시설과 기념물 등이 자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인도 여기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왜성대에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면서 각종 기념식을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본이 조선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 등의 사상자를 추모하고 이를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갑신정변 당시 사망한 일본인을 추모하기 시작하였다. 1887년부터 갑신정변 기념일인 12월 6일에 일본 신도식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본 거류민은 이러한 제사를 통해 집단의식을 강화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거류민은 왜성대에 추혼비를 세웠다. 청일전쟁 당시 양화진 등에 가매장하였던 일본군 전사자의 유골을 안치하고, 여기에 갑신정변 등 일제의 조선 침략 당시 전사한 이들을 합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거류민단에서는 3,000원의 기부금을 모아 오사카 포병공장에 제작을 의뢰하였다. 오사카 포병공장에서는 주조로 기념비를 제작하였다. 오사카 포병공장은 대구경 화포를 주로 제작하던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군수공장이었다.
1899년 기념비가 세워진 이후 매년 11월 3일(明治祭, 메이지 일왕 기념일) 이곳에서 참배하였다. 하지만 1904년 러일전쟁 개전 이후에는 추위로 준비가 불편하고, 참배가 힘들다는 이유로 야스쿠니 신사의 제의(祭儀)에 맞춰 5월 6일로 변경하였다.
일제는 한국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전사한 이들을 거류지의 중심에 두고, 이들에 대한 참배를 통해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고 나아가 거류민들 사이의 사회적 연대감을 얻고자 하였다. 중요한 점은 이후 러일전쟁 전사자를 비롯하여 1907년 군대 강제 해산 당시 죽은 경찰관까지 합사하면서 이곳을 일종의 종교적 구심점으로 의식화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전쟁영웅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양산은 결국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선전도구로 활용되었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soothhistory@na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