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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한국 유치가 비관적인 이유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2.11.24 11:10 수정 2022.11.24 12:43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시장 규모 한계에 노조리스크까지…경영환경 개선부터 힘써야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상으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접견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를 한국에 건설해 달라고 요청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한국을 최우선 투자 후보지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지난 23일 화상면담을 통해 이뤄진 대화다.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의 설비를, 그것도 대규모 생산거점인 기가팩토리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게 된다면 국가적인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인 완성차 단일 공장의 생산능력이 연간 30만대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제외한 중견 3사는 연간 생산량 30만대를 채우지 못한다. 그나마 한국GM이 내수와 수출을 포함해 연 20만대를 넘어설 뿐 르노코리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20만대를 목표로 매년 안간힘을 쓰고 있다.


머스크가 구상하는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는 연간 생산능력이 150만~200만대다. 그는 지난 9월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연 생산 2000만대 달성을 위해서는 기가팩토리가 최소한 10~12곳은 돼야 하고, 공장마다 150만~200만대는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테슬라 기가팩토리 하나로 일반 완성차 공장 5~6곳을 한 번에 유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에는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기가팩토리가 들어서면 대규모 고용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배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전후방 산업의 수요도 발생한다. ‘유치를 할 수만 있다면’ 대박이다.


하지만 ‘유치를 할 가능성’을 논한다면 그리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 힘들다.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유럽과 같은 거대 시장이 아니다. 내수 시장 규모가 연간 160만대 수준에 불과하다. 테슬라가 시장의 100%를 통으로 먹어야 기가팩토리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외국계 브랜드가 한 자릿수 점유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한국 시장의 특징이다.


기가팩토리의 역할이 ‘권역 생산거점’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 시장 중국에는 이미 테슬라의 생산기지가 있다. 게다가 중국은 수입 자동차에 대해 높은 관세장벽을 쌓고 있다.


동해 건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외국산 브랜드에 대해 배타적이다. 심지어 소비자들은 토요타, 혼다 등 자국 자동차 업체들의 친환경차 전략에 순응해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차에 호의적이다.


동남아 지역은 같은 권역으로 묶기엔 무리가 있다. 거리에 따른 물류비용‧시간도 문제고 역외관세도 부담이다. 이 지역이 타깃이라면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에 포함된 아세안 국가 중 한 곳을 택하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다.


더 큰 걸림돌은 머스크가 우리나라의 노사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머스크는 ‘현대자본주의의 우상’으로 불릴 정도로 철저한 시장경제체제 신봉자다. 트위터 인수 이후 벌어진 대량해고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불필요한 인력은 내보내는 게 당연하다는 경영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영업이익의 30%를 내놓으라는 노조와 매년 임금 교섭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수시로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을 감수해야 하며, 일거리가 줄어도 막무가내로 고용 보장을 요구받는 ‘노조 공화국’의 현실을 머스크는 알고 있을까.


물론 기가팩토리 정도의 대규모 경제효과를 가진 설비를 유치하는 대가로 정부가 어떻게든 테슬라를 노조 리스크에서 자유롭게 해줄 묘안을 짜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난 수십 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노조 리스크에 시달려야 하는 완성차 업체들의 박탈감은 어쩔 것인가. 심각한 역차별 논란을 가져올 일이다.


‘후보’, ‘~중 하나’, ‘고려’는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머스크는 몇 단어 되지도 않는 짧은 문장에 불확실한 표현을 세 개나 넣었다. “한국을 최우선 투자 후보지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것보다 더 기약하기 힘든 말이다. 이 정도면 ‘정중한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기가팩토리 유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대한 시도는 해보는 게 맞다. 다만 그보다 선행돼야 하는 게 스스로 찾아와 투자할 정도의 경영환경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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