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국방 행정사'로 소개 "내가 군인 출신이라 어떻게 군 면제 받는지 잘 안다"
상담 수수료 2000만원 요구…법원에 상담료 지급 명령 신청하며 압박
합동수사팀, 관련자 뇌전증 진단 적절 여부 수사 중…법조계 인사 자녀들도 연루
허위 뇌전증(간질) 진단서를 이용한 병역비리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병역브로커 김모 씨가 상담 계약을 파기하려 던 의뢰인들을 압박하기 위해 법원에 상담료 지급명령까지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이 병역비리 사건에는 프로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등 최소 70명이 연루된 것으로 전해진다.
9일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2021년경 군 입대를 앞둔 A 씨는 온라인에서 자신을 '국방 행정사'라고 소개한 김 씨의 광고를 보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입대 컨설팅'을 내세우며 "내가 군인 출신이라 어떻게 군 면제를 받는지 잘 안다. (A 씨가 사는) 광주까지 가서 상담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김 씨는 광주에서 A 씨를 만나 "뇌전증이라고 들어봤나. 뇌전증으로 2년 동안 치료받으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A 씨가 "뇌전증이 없는데 어떻게 진단을 받느냐"고 묻자 김 씨는 "뇌전증 환자의 70%는 원인 없는 발작 증상을 보인다"며 "발작이 있다고 거짓말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줬다.
김 씨는 그러면서 상담 수수료라며 뇌전증 진단을 받으면 200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A 씨가 망설이자 다른 계약서를 보여주며 "현역 의사도 1억 원에 같은 계약을 맺은 적 있다"고 설득했다. A 씨는 이후 계약서에 서명했고, 뇌전증 검사 일정도 잡았다. 다만 불법일 수 있다는 생각에 실제로 검사는 받지 않았다.
김 씨는 얼마 후 A 씨에게 "검사를 받았느냐"고 물었고 A 씨는 "불법인 것 같아서 하지 않겠다"며 계약 파기를 요청했다. 김 씨는 그러자 "상담 수수료 2000만 원을 달라"며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A 씨는 이에 대응하지 않았고, 그 사이 지급명령은 확정됐다. 김 씨는 이후 법원에 강제집행을 시도했고, A 씨는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섰다. 법원은 결국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 씨는 A 씨외의 일부 의뢰인들에게도 이 같은 압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OK금융그룹 프로배구단 소속인 조재성 선수도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압박해 병역비리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의뢰인들이 김 씨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병역비리에 가담했더라도 형사처벌을 피해 갈 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이 병역비리 사건은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이 담당하고 있다. 수사팀은 이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뇌전증 진단 및 치료 과정이 적절했는지 살피는 중이다. 그러면서 복수의 현역 축구선수와 승마 볼링 등 다른 종목 선수, 래퍼와 법조계 인사 자녀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