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지속에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악화 겹쳐
실적 부진 뚜렷한 타개책 없어…빈익빈부익부 우려
지난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실적이 반토막나는 등 대부분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상, 침제된 경제지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증시가 침체 일로를 걸어서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유동성 위기에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올해도 실적 부진을 극복할 뚜렷한 해법이 없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대부분이 작년 실적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사 중 가장 감소 폭이 컸던 곳은 하나증권으로 연결기준 작년 영업이익 966억원을 기록해 전년(4915억원) 대비 80.3% 감소했다.
KB증권은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0.17% 줄어든 245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연결기준 연간 영업이익 4409억원으로 전년 대비 65.9% 감소했고 NH투자증권도 5213억원으로 59.7% 줄었다.
미래에셋증권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8459억원으로 지난 2021년에 비해 43.1% 줄었다. 삼성증권과 신한투자증권도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대비 56.1%와 79.5% 감소한 4239억원과 1200억원을 기록했다.
아울러 대신증권과 하이투자증권도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71.1%와 74% 감소한 2561억원과 59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실적이 늘어난 곳은 메리츠증권이 유일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연결 기준 잠정 영업이익으로 1조92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15.1% 증가한 수치로 나홀로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초부터 금리 인상을 앞두고 채권 포지션을 변경하는 등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증권사들의 이러한 실적 부진은 지난해 급격하게 이뤄진 금리 인상 영향이 가장 컸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면서 주식과 채권 등 금융자산가격이 일제히 급락했다.
이에 증권사들의 운용자산 손실 규모는 늘어난 가운데 주가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면서 브로커리지 수익도 급감했다. 기업공개(IPO) 시장 위축 등으로 투자은행(IB)부문 수수료 수입도 줄었고 자산곤리(WM) 부문 역시 유동성이 감소했다.
부동산 시장 냉각도 실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이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는 등 활황을 유지하면서 부동산 PF는 증권사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금리 인상 지속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고 레고랜드발 사태로 부동산 PF 시장이 충격을 받으면서 단기 자금경색으로까지 확산됐고 증권사들은 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증권사들이 올해 리스크 관리 고도화와 토큰증권(STO·Security Token Offering) 발행을 통한 신규 수익원 확보 등으로 실적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부동산 PF가 올해 실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증권사들의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이 8.2%로 2021년 말(3.7%)보다 4.5%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19년 말(1.3%)보다는 6배 넘게 오른 것이다.
금융당국이 지원 중인 1조8000억원 규모 부동산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프로그램도 오는 5월 종료 예정이다. 시한 연장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는 상태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대로 끌어올리면서 진행하던 부동산 PF의 사업성이 크게 하락했다”며 “많은 사업장에서 브릿지론(본 PF 승인 전까지 필요한 초단기 자금)의 본 PF 전환에 제동이 걸렸고 우발부채가 현실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도 “금융권이 부동산 PF를 재개한다지만 대부분 초우량 사업장에 한정될 것”이라며 “금융사와 운용사의 리스크 관리가 상당히 강화됐지만 자금은 우량자산에 더욱 집중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연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