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빅 스피커' 역할 자처
‘이복현 관치.’ 그가 금융감독원장에 부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부정적 표현의 상징이다. 이는 금융권을 향해 연일 내놓고 있는 ‘강경 메시지’ 영향이다.
최근 꼬리표에는 ‘월권’도 새롭게 추가됐다. 금융권의 빅이슈인 은행 과점체제 개편과 관련해 그의 발언이 금융위 패싱 논란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4일 임원회의에서 우리‧하나‧신한‧KB국민‧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고액 성과급 논란 등과 관련해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임원들에게 지시했다. 즉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진출을 늘려 시중은행의 여·수신 과점체제를 경쟁 체제로 개편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은행업과 인터넷전문은행 인허가는 금융위원회 소관 업무로, 금감원장이 지시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무 파악이 덜 된 것인지, 금융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결론은 금감원장이 상급기관인 금융위를 제쳐두고 자기 권한 밖의 일을 지시하는 월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금융권에선 대통령과의 친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이 원장은 윤 대통령이 2006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현대차 비자금과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을 담당할 때 수사팀에 차출돼 호흡을 맞춘 이력이 있다. 그는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중 기수가 가장 낮아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린다.
이런 가운데 이 원장의 임원회의 발언 다음날인 지난 15일 윤 대통령은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과점체제인 은행과 통신업계의 경쟁시스템 강화를 위해 제도를 개선할 것을 지시하자, 이 원장이 현재 윤 대통령의 빅 스피커(Big speaker)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지적도 더해진다.
반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부임 초기부터 실권이 없는 금융위원장이란 평을 받는 등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윤 정부가 들어선 뒤 금융위원장 하마평이 계속 바뀌면서 인선이 늦어졌고, 뒤늦게 겨우 찾았던 인물이다. 출발이 늦었다는 이유로 김 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열리지도 않았던 점은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장이 상급기관장인 금융위원장보다 더 주목을 받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금융권에 묘한 긴장감과 뒷말이 무성한 건 당연지사다. 더군다나 최근 은행의 과점 체제 개편이라는 금융권 빅이슈를 기점으로 금융위 패싱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해당 문제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은행권 과점 체제 재편이라는 빅이슈 가운데 두 사람의 존재감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당국의 두 수장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점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걸맞지 않은 태도를 보이거나 목소리를 낼 때 시장에 전달되는 메시지의 논점과 방향성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작년 은행권이 당국의 메시지를 듣고 혼란스럽다는 성토를 해왔던 점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 문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직이불사(直而不肆) 광이불요(光而不燿)’라는 경구가 있다. 곧으나 방자하지 않고, 빛나되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자신을 너무 내세워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지도자의 덕목에도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여러 의미에서 두 금융 수장들의 다음 발언에는 월권과 관치, 패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이번 일로 선 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원장의 다음 행보에는 ‘진짜 금융감독원장’ 다운 모습이 담겨져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