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메모 형태로 유서 남겨…"정부 대책 굉장히 실망스럽다"
피해자 살던 빌라 임의 경매 상태…최근까지도 전세금 돌려받지 못해
경찰, 범죄 혐의점 없는 것으로 파악…유족들에 시신 인계
아파트와 빌라 등 주택 약 2700채를 차명으로 보유하고 전세 보증금 120억 가량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돼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린 건축업자에게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던 피해자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더는 버티기가 힘들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일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 등은 전세사기 피해자인 30대 남성 A 씨가 지난달 28일 오후 5시 40분께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A 씨의 지인은 연락이 되지 않는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문이 열리지 않자 112에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당국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숨진 A 씨를 발견했다.
A 씨의 휴대전화에서 메모 형태로 발견된 유서에는 어려운 가정환경 등이 담겼다. A 씨는 또 이 유서에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대책위 관계자와 지인들에게 고맙다'고 쓰기도 했다.
휴대전화 기록상 유서는 A 씨가 숨진 채 발견되기 이틀 전인 지난달 26일께 작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책위는 또 그가 유서에 '(전세 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A 씨가 살던 빌라는 현재 임의 경매에 넘어간 상태다. 그는 최근까지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 등에 넘어갔을 때 최우선으로 일정 금액의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는다.
2011년 주택 근저당권이 설정된 A 씨의 빌라 전세금은 7000만원이다. 당시 소액임차인의 전세금 기준인 6500만원을 초과했다. 이 때문에 A 씨는 소액임차인에 해당하지 않아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A 씨의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의 침입 흔적이나 외상 등 범죄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유족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건축왕으로 불린 B 씨는 지난달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바지 임대업자·공인중개사 등과 짜고 조직적으로 전세 사기를 친 혐의를 받는다.
B 씨는 지난해 1∼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전세 보증금 126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뒤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주택을 사들이기 시작한 그는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새로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 그가 소유한 주택은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약 2700채에 달하며, 대부분은 그가 직접 신축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