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적자↑ 내수 침체 장기화 조짐
‘물가 우선’ 정부, 경기 부양책 마련
섬세한 정책 조절 능력 보여야 할 때
정부가 최근 대외 무역 상황이 계속 악화하자 물가와 경기를 동시에 잡기로 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4%대(4.8%)까지 떨어지자 내수 부양책을 추진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각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해온 만큼 이번 대책은 윤석열 정부 경제팀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이기도 하다.
1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내수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비 쿠폰 발행이나 국내 여행 활성화 대책 등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부처는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광과 농수산, 소상공인 등 필요한 분야를 대상으로 스마트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경기 부양책 추진에 신중했다. 내수 시장 활성화가 자칫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 때문이다. 정부 정책 지원으로 시장에 돈이 돌면 상품 가격(물가)은 오를 수밖에 없다. 고환율, 고유가 상황이 물가 상승의 대외적 요인이라면, 내수 경기는 내부 요인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 안정이 정책 최우선임을 강조해 왔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주최한 제1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 기조연설에서도 “민생 안정 첫걸음이 물가 안정이고, 물가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며 “물가가 불안하면 취약계층이 무너지기 때문에 물가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 안정에 방점을 찍고 정책을 펼치는 동안 대내외 경제 상황은 악화했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무역 상황이 정부 예상을 벗어나는 수준까지 나빠졌다. 1월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45억2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커진 것은 세계 경기 둔화 영향으로 반도체, 철강제품 수출이 5개월 넘게 감소한 영향이 크다. 고유가 고환율 상황에 원자재 등 수입은 늘어나다 보니 무역 상황은 연일 나빠질 수밖에 없다.
내수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지난 5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1%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2.1% 줄어든 뒤 12월(-0.2%) 감소세가 완화했으나, 다시 감소 폭이 커졌다.
경기 침체는 지난해부터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기재부는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가 전기 대비 0.4% 감소하는 등 현재 경기 흐름을 ‘둔화’로 규정한 바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고물가와 고금리 속 수출 부진의 영향이 파급되면서 내수 회복세가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우선’을 외치던 정부가 소비 진작을 꺼내 든 이유는 머뭇거리다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상황은 정부에게 매우 불리하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내수 진작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이처럼 제한적인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불러올지도 미지수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정투입 대비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자체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소비 진작책은 효과가 일시적일 수 있다”며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지속해서 찾아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4%대 후반인 상황에서 소비쿠폰을 뿌리는 것은 효과 없는 재정낭비 요인일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