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기고] 관심에서 멀어졌지만…위태로운 안식처, 우크라이나 난민센터에서의 하루


입력 2023.04.14 13:37 수정 2023.04.15 09:4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2022년 2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인구 3분의 1은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언어 장벽이 비교적 낮은 몰도바에 약 5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유입되었고 현재는 약 10만명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인구 300만 명뿐인 몰도바는 동유럽 최빈국인데다,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타 국가 난민센터에 비하면 그 수준이 더욱 열악한 상황입니다.


파트리아 난민센터 전경

피스윈즈코리아는 이러한 몰도바의 수도, 키시나우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파트리아 루코일(이하 파트리아) 난민센터 운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키시나우 시에 피난 온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상으로 식품 등 평균 1800가구에 기초 물자를 제공하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한때는 300명을 수용하던 센터였으며, 지금은 약 80명이 머물고 있습니다. 9년간 버려졌던 영화관이었던 이곳을 고치고 개선해 키시나우 시의 지원으로 어렵게 구성된 공간입니다.


센터에 있는 난민 70%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입니다. 오데사는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유류 저장고가 있어 러시아의 주된 폭격지로 꼽힙니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전쟁 탓에 센터 관리자는 앞으로 많은 수의 난민을 예상하고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최근 2개월 전 도착한 난민부터 어느덧 1년이 넘은 난민까지. 이들에게 센터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센터 내 몇몇 국제 NGO 지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후원이 끊길지 모르는 일시적인 ‘도시락’ 형태로 제공되는 식량 지원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키시나우 시 보리스 길카 보건사회국장은 물자배급을 포함하여 이들 난민을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는 찾기 어렵다고 전합니다. 파트리아 난민센터만이 어린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시가 지원하는 취업 교육을 연계하는 등 몰도바 사회에서 장기적 체류 방안을 고민하고 대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현재 센터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공사가 필요한 난민센터 내부, 임시벽을 설치하고 있고 생활하는 난민센터 내부, 우크라이나 전통음식 살로, 공용공간 속 난민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상황에서도 난민센터의 시간은 흘러갑니다. 점포가 있던 개별공간들은 방이 되었고, 헬스장이었던 공간을 살려 세탁실, 샤워실이 만들어졌습니다. 방이 부족하자 레스토랑이었던 공간과 복도에는 가벽을 설치하여 임의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1층에는 식탁이 있는 공용 공간이, 2층과 3층에는 공용화장실과 공사 중인 아이들을 위한 방이 천천히 고쳐지고 있습니다. 아직 추운 4월 초, 담요를 둘러쓴 아이들이 식사 시간에는 왁자지껄 소란스러워 지지만 그 외에는 가만히 앉아 허공을 보거나 처음 보는 외국인을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후원을 이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떠나기 마지막 날이었던 4월 3일, 난민센터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생일을 맞이한 아이를 다 같이 축하하고 저녁을 먹은 뒤, 8시 무렵부터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영어 소통이 가능했던 18세 의대생 소녀가 보초를 서는 날이었습니다. 소녀는 보초를 서게 된 배경을 들려줍니다. 지난 1월 우크라이나 난민 체류에 반대하는 키시나우 시민 중 한 명이 센터에 돌을 던져 창문이 깨지는 등 소란이 났습니다. 보안 인력도 없이, 아이와 여성들이 95%가 넘는 이 센터는 점차 낮조차도 두려워집니다.



보초는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계속됩니다. 2인 1조로 당번을 정하여 시간대별로 센터 안팎을 확인합니다. 서로의 나라를 궁금해하고 소식을 물으며 깊어지는 새벽 1시, 첫 번째 졸음의 고비가 찾아옵니다. 차를 건네며 우크라이나 전통 음식 ‘살로’를 나누어주고 고향 사진들을 보여줍니다. 늘 비슷한 하루에 찾아온 손님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하나둘 모이고, 멀리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저를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실시간 고향(우크라이나 오데사) 폭격 소식

평화로울 것만 같던 새벽 2시 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표정은 조금 일그러집니다. 러시아의 드론 15대가 오데사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핸드폰 알람이 연달아 울리며 각자 지역에 남은 가족과 친구들은 무사한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사진과 영상을 서로 나누며 위치와 피해 정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동안 이어갔습니다.


새벽 3시 반, 조금은 가라앉힌 마음을 다잡고 따뜻한 난방기구에 몸을 기대고 앉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눈을 붙여봅니다. 공용 식탁 옆 매트리스를 펼치고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오전 6시 30분, 일자리 혹은 취업 교육의 기회를 찾은 일부가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새벽 내 소식을 공유하고, 자식도 손주도 없는 노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돕는 젊은 층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층별 4개의 꼭지뿐인 샤워실에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어 혼잡함을 줄이는 규칙도 있습니다. 아침을 나서면 저녁 6시 무렵이 되어야 하나둘 다시 센터로 돌아오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1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사진 촬영 지원

하루를 온전히 그들과 보내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습니다. 1년 전 웃음이 없던 이곳에 이제는 아이들이 속옷만 입고도 뛰어다닙니다. 처음 본 외국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먼저 사진을 찍자며 안깁니다. 전쟁 여파로 착란 증세가 있는 노파의 곁에서 식사를 챙기고 모자를 떠주는 연고 없는 어머니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업만 받은 탓에 이곳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청소년들을 보며 센터가 이들에게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해봅니다.


현실은 장기화되는 전쟁에 관심이 줄어들고 지원 예산도 바닥을 보이면서 관리인력을 유지할 비용도 빠듯합니다. 파트리아 난민센터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가족과 함께 있을 공간이자, 적어도 끼니 걱정을 덜 수 있으며 서로의 고향 소식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입니다. 더 이상 이들이 터전을 잃지 않기를, 이들에게 최소한의 안정감을 계속해서 제공할 수 있기를, 나아가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강소정 (재)피스윈즈코리아 코디네이터 sojung.k@peacewindskorea.org

'기고'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